“쌍용아, 여기 답이 있지 않느냐!” 프리미엄 SUV 개척자 무쏘

국내외 SUV 열풍이 부는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GV80을 내놓으며 프리미엄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편 국내 SUV시장의 터줏대감인 쌍용차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쌍용차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신형 무쏘 프로젝트(D300) 취소 소식과 2021년까지 신차출시 계획이 없다는 발표로, 쌍용차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커져만 간다. 한때 소비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궜던 SUV 명가 쌍용차의 과거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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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명예가 달라집니다. <무쏘>

출시 전부터 지금까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GV80 소식에 지친 독자 여러분을 위해, 오늘은 우리나라 프리미엄 SUV 역사의 산 증인, 쌍용차의 무쏘를 알아보고자 한다.

국내 SUV시장 초기를 대표하는 모델로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와 쌍용차의 코란도가 있다. 사실상 군용차로 봐도 무방한 외관과 기능덕분에 지금까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추억의 올드카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열리던 80년대 중후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소비자들은 승차감 좋은 세단과 SUV를 원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군용차를 조금 다듬는 수준의 초기 SUV 모델들은 외면받게 되었다.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눈치챈 현대정공은, 1세대 미쯔비시 파제로를 한국에 들여와, 1991년 갤로퍼를 출시했다. 각진 디자인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군용차와 다른 디자인으로 주목받는데 성공했다. 갤로퍼는록스타와 코란도가 차곡차곡 쌓아둔 인기를 쓸어담으며 대히트를 쳤다.

아시아자동차는 군납으로 버티면 된다지만, 70년대부터 SUV 명가라는 간판을 달고 살아온 쌍용차 입장에서는 ‘도장깨기’ 같은 치욕이었다. 오죽하면 일본 이스즈의 엔진을 쓰던 코란도가 갤로퍼를 향해 ‘일본차’라고 헐뜯으며 싸움을 걸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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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와 쌍용차의 SUV 전쟁은, 마치 영화 “록키4”같았다. 일본의 기술로 만들어진 갤로퍼는 ‘이반 드라고’였고, 패배한 코란도는 ‘아폴로 크리드’였다. 옛 명성을 지키기 위해 와신상담하던 쌍용차는, 1993년 ‘록키 발보아’, 무쏘를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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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만든 직선과 곡선의 날렵한 디자인
벤츠와의 기술협력을 통한 벤츠엔진 탑재
주행 중 앉은 자리에서 구동방식을 바꿀 수 있는 보그워너의 신기술 탑재

FJ(FUTURE JEEP)라는 프로젝트이름처럼, 무쏘는 당시 쌍용차의 미래를 베팅한 SUV였다. 부드럽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대신 비포장도로가 어울리던 갤로퍼와 달리, 무쏘는 빌딩숲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갖췄다. 쌍용차의 명운을 건 도박은 제대로 적중했다. 94년, 96년 버밍엄 모터쇼에서 무쏘는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빌딩숲과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경주대회인 ‘다카르 랠리’에서 우수한 성과와 벤츠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TV광고로 강력히 어필하는 등 고급 SUV라는 차별화된 전략을 지향했다. 갤로퍼를 이기겠다는 쌍용차의 전략은 딱딱하고 불편한 SUV에 질린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94년~98년 다카르랠리 종합2 ,디젤부문 1, 완전개조부문 7위

세련된 감각과 부드러운 승차감까지 가진 고급 SUV 무쏘는 한국 SUV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크게 성공했고, 코란도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못내던 쌍용차를 살린 효자가 되었다.

무쏘 출시 당시, 쌍용차는 렉스턴이나 체어맨 같은 플래그십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고급 SUV전략을 내세운 무쏘 덕분에 잭팟이 터졌고, 플래그십 SUV의 가능성을 본 쌍용차는 무쏘의 최고급 트림인 “무쏘 500 리미티드”를 내놓았다.

비록 무쏘 500 리미티드는 가격이 너무 비싸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무쏘를 프리미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굳이 따지자면 상징적인 모델인 셈이다. 당시 현대 다이너스티보다 비싸, 500대 중 100대 밖에 팔지 못했고, 나머지 400대는 배를 타고 타국 살이를 하게 되었다.

무쏘 500 리미티드는 그 시절 ‘제네시스 GV80’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만큼 평가가 좋았다. 이처럼 쌍용차 큰형님인 코란도가 밑바닥을 기며 구르고 있을 때, 무쏘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영원한 1위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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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대량 실직자를 만든 IMF가 찾아왔다. 기아자동차는 얼어붙은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프라이드 영’같은 염가판 모델을 내놓으며 안간힘을 썼다.

당시 쌍용차는 체어맨 개발을 위해 부담될 만큼 비용을 투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릿고개를 넘기고 있었다. 쌍용차가 어렵다는 소식을 들은 대우차는 부족했던 SUV 라인업을 채우기 위해 쌍용차에게 동앗줄을 던졌다. 이 때 부터 쌍용차는 이리저리 팔렸고, 간판스타였던 무쏘도 여러번 앰블럼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다사다난했던 세기말이 지나고 21세기로 접어들던 시기 대우차가 무너지면서 무쏘는 쌍용차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플래그십 세단 타이틀은 체어맨에게, 고급 SUV 타이틀은 렉스턴이 차지하면서 무쏘에게 약속된 미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왕년에 잘 나가던 무쏘가 아닌가!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 귀농하는 어르신들처럼, 등에 큼지막한 지게 하나 얹고 픽업트럭으로서 말년을 보내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인정받던 주행성능과 픽업짐칸으로 인한 저렴한 화물차 세금으로 무장한 무쏘는 프리미엄 SUV 명찰을 떼고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르며 실용성까지 갖춘 ‘무쏘 스포츠’로 개명했다.

실용성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무쏘 스포츠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급 SUV에서 플래그십, 그리고 픽업까지, 무쏘는 언제나 쌍용차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들보 역할을 하며 2006년 은퇴한다.

무쏘와 GV80은 둘 다 고급 SUV지만, 무게감이 다르다. GV80이 현대차 가문의 플래그십 모델들이 깔아놓은 아스팔트를 시원하게 달리는 금수저라면, 무쏘는 쌍용차 가문이 흔들릴 때 마다 늘 영웅처럼 나타나 무거운 짐을 짊어 진 든든한 버팀목 같은 가장이다.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형편 어려운 쌍용차를 짊어진 무쏘 이후 SUV 막내 티볼리가 소년 소녀가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다.

요즘 쌍용차를 보면 오랜 세월 쌓아올린 마초적인 본성을 잊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트렌드만을 쫒다보니 옛 코란도는 찾아볼 수 없고, 프리미엄으로 유명했던 렉스턴 마저 ‘렉카’ 라는 오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SUV에 집중하고자 내친 체어맨을 보고 있으면 옛 무쏘가 그리워지는건 어쩔 수 없다.

다시 한번 쌍용차가 무쏘처럼 국내 SUV시장에서 활약할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