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렇게 팔려요?”극과 극 한·일 독일 브랜드 실적

ⓒ WIKIMEDIA COMMONS – CC0

일본에는 “롯폰기 코롤라”와 “아카사카 서니”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쓰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두 단어의 의미는 “강남 쏘나타”의 일본식 표현이다.

한국의 “강남 쏘나타”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이하 독3사)로 대표되는 것처럼 일본의 “롯폰기 코롤라” 역시 독3사의 차량을 대표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이런 비슷한 단어를 가진 것처럼, 2020년 1월 기준 일본의 독3사 인기 브랜드 순위 1)는 1위는 메르세데스-벤츠(20.9%), 2위는 BMW(8.5%), 3위는 아우디(7.7%)로, 한국과 동일한 수치를 보인다.
1)일본 자동차 수입조합(JAIA)의 통계

그런데 한일 양국이 똑같은 것 같은 이 “독3사”통계의 속을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기 모델로 알아보는
일본의 수입차 소비스타일

< 2019년 상반기 수입차 모델별 판매량 ▶ 한국 >

1.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18,322)
2.     BMW 5시리즈 (6,635)
3.     렉서스 ES (4,915)

4.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4,807대)
5.     혼다 어코드 (3,512대)
6.     벤츠 GLC클래스 (3,505대)
7.     도요타 캠리 (3,313대)
8.     포드 익스플로러 (3,185대)
9.     벤츠 S클래스 (2,972대)
10.   BMW 미니 (2,358대)

< 2019 상반기 수입차 모델별 판매량 ▶ 일본 >

1.     BMW 미니(3도어, 5도어컨버터블클럽맨컨트리맨) (12,579)
2.     벤츠 C클래스 (11,257)
3.     폭스바겐 골프 (10,012)
4.     폭스바겐 폴로 (4,820대)
5.     BMW 3시리즈 (4,473대)
6.     볼보 40시리즈(V40, XC40) (4,431대)
7.     벤츠 A클래스 (4,243대)
8.     벤츠 E클래스 (4,062대)
9.     볼보 60시리즈(V60, XC60, S60) (3,694대)
10.  벤츠 GLC클래스 (2,993대)

ⓒ MERCEDES-BENZ

한국의 경우, 상위권에는 E클래스와 5시리즈 등등 준대형차로 대표되는 모델들이 포진되어 있다. 수입차를 구매한다는 것은 일종의 과시욕이기도 하다 보니, 큰 차를 선호하는 한국은 준중형급 이하의 수입차는 판매량이 낮은 편이다.

특히 기아의 프라이드와 현대의 i30를 제외하면 성공적인 성적을 낸 모델을 찾기 힘든 해치백의 불모지답게, 10위권 통계에서는 과거부터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온 BMW의 미니가 유일하다.

ⓒ MINI

하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미니는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비록 5종의 모든 모델을 전부 합한 수량이지만, 그만큼 미니의 인기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치다.

또 다른 해치백인 벤츠 A클래스와 폭스바겐 골프, 폴로 역시 강세를 보인다. 특히나 디젤 게이트 이후 한국에서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판매량이 한동안 하락세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골프와 폴로의 강세는 신기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브랜드 판매량은 동일하지만, 판매되는 차종의 성향이 완전히 갈린다.

ⓒ MERCEDES-BENZ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벤츠 E클래스의 성적이다.

2018년, 한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E클래스 판매량을 기록했다. 심지어 작년 한해 동안 한국에서 E클래스는 기아자동차의 K5보다 많이 팔렸다. E클래스가 K5의 3배 가격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굉장한 수치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E클래스 보다 낮은 판매량을 기록한 C클래스가 너무 흔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 한국의 프리미엄 세단 사랑이 정말 어마 무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E클래스가 낮은 판매량을 보인다. 해치백이 강세인 일본의 수입차 판매량에서 C클래스가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일본도 프리미엄 세단에 대한 수요가 존재할 텐데 말이다.

도대체 왜 일본은 이런 독특한 수입차 판매율을 보여주는 것일까? 한국에 비해 구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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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차고지증명제라는 제도가 있다. 자동차를 보유하려면 필수적으로 자동차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보유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땅에 주차장까지 만들어야 한다.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이 있는 시골이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서울처럼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쿄에서 주차공간을 할당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 DAKI

이러다 보니 차를 구매할 때 필수적으로 사이즈를 따지게 된다. 대형 프리미엄 세단을 구매할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자택의 차고가 작거나 없다면 구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는 프리미엄 세단으로서 조금 작다는 평을 듣는 “아우디 A5”가 너무 커서 운행하기 힘들다며 중고차 시장으로 내몰리는 지경일까.

겨우 주차공간을 마련하고 중형 프리미엄 세단을 구입했다면, 이번엔 세금이 문제다.

일본은 자동차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추가적으로 세금이 따라붙는 “중량세”가 있다. 자가용 승용차의 경우 0.5톤당 5000엔 정도의 세금이 추가적으로 따라붙는데, 벤츠 E클래스의 중량이 2톤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중형급 이상의 차를 구입하는데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는 왜 일본 수입차 시장에서 해치백이 강세인지 잘 보여준다.

최대한 편한 주차와 실용적인 소비를 추구하면서 독3사를 대표하는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바로 해치백이기 때문이다.

통계상으로 보면 언뜻 비슷해 보이는 판매량이지만, 일본의 인구수를 생각하면 일본은 수입차 점유율이 높은 국가가 아니다.

반일감정으로 인기는 많이 떨어졌지만 렉서스는 여전히 독3사의 대체재로 거론된다. 일본에도 렉서스는 훌륭한 독3사의 대체재다. 게다가 수십 년을 준비한 토요타의 큰 그림 때문에, 수입 플래그십은 마케팅으로 이길 방법이 없다.

ⓒ Toyota

80년대 토요타의 캐치프레이즈는 “언젠가는 크라운”이었다.

처음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는 대부분 저렴한 보급형 모델을 구매하지만, 성장하다 보면 상위 등급의 차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토요타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 지속적인 고객 관리 정책을 펼쳤다. 언젠가는 꿈꾸던 플래그십인 크라운까지 구매하도록 하는 일종의 장기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때마침 80년대 일본의 경제 호황기 시절 폭발적으로 늘어난 고급차 수요로 인해, 크라운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토요타는 크라운보다 한 단계 윗급인 “토요타 셀시오”를 출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렉서스 LS”의 등장이었다.

꼭 렉서스가 아니더라도, 광기에 차있던 일본의 버블 시대는 프리미엄 세단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를 거쳐온 일본이기 때문에, 통계에서 큰 강세를 보이는 수입 플래그십을 보기 힘든 것이다.

ⓒ MERCEDES-BENZ

일본에서 수입 플래그십은 약세지만, 중형세단의 경우는 꽤나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 특히 벤츠 C클래스와 BMW 3시리즈는 해치백과 함께 늘 판매량 5위권에서 베스트셀링카로 이름을 올린다.

이런 독특한 판매량 역시 광기의 버블 시대가 남긴 이미지 때문이다.

버블 시기에 누구나 렉서스 같은 플래그십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시기라지만, 이 당시에도 차를 구입할 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주차공간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일본 자동차 시장의 심리를 차의 크기보다 브랜드의 가치가 중요한 “양보다 질”로 변화시키는 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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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목을 받은 모델이 바로 BMW E30(이하 3시리즈)였다.

3시리즈는 당시 일본의 대표 준중형 패밀리세단인 “토요타 코롤라”와 거의 비슷한 사이즈였다. 이렇게 컴팩트한 3시리즈는 좁은 일본의 거리를 여유롭게 돌아다니기에 충분했고, 크라운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의 “강남 소나타”인 “롯폰기 코롤라”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985년에는 이 시기에 팔린 3시리즈를 “롯폰기 연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3시리즈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환락가와 클럽이 즐비했던 롯폰기의 거리의 자동차는 전부 3시리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 MERCEDES-BENZ

벤츠의 E190(이하 C클래스)와 아우디의 80(이하 A4) 역시 이때부터 인지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3시리즈와 동일하게 적당한 크기와 고성능은 버블시기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했다.

3시리즈처럼 C클래스와 A4 역시 “아카사카 써니”라는 별명으로 버블시기 일본의 국민차로서 명성을 쌓았다.

비록 버블이 무너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암흑기에 빠졌지만, 이때 명성을 쌓아둔 독3사의 중형세단은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비록 정반대의 소비 스타일이지만 명품으로서 독 3사를 소비하는 점은 한국과 동일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서 “잃어버린 20년”으로 바꾸어 불러야 할 정도로 긴 불경기를 겪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경기로 인해 무려 44년 전 구축한 노후된 교통 인프라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보다 자동차 문화의 수준은 높을지언정, 각종 세금 문제와 주차 인프라 등의 문제처럼 자신들이 만든 틀 속에 갇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전자제품시장에서 한 번의 몰락을 경험한 일본이 과연 2020올림픽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