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 고집보다 더한 제조사들의 이유있는 고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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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기업마다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 온 이런 특징은 브랜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난히 색깔이 강한 기업들이 존재한다.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튀는 특징은 매력적인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기도 한 기업들의 고집은 어떠한 사연이 있을까?

레이스가 남긴 유산-포르쉐의 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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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키박스는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좌핸들 차량이면 좌측, 우핸들 차량이면 우측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남다른 구성은 모터스포츠가 남긴 포르쉐의 전통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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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르망24시 내구레이스는 출발 신호와 동시에 자동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해야 했다.

이런 치열한 승부 속에서 포르쉐는 1초라도 먼저 시동을 걸고 출발하여 유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해, 한 손으로는 시동을 걸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기어를 넣는 묘안을 냈다.

나름 잔머리같은 생각이지만 이러한 간절함이 레이스에서의 성공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을 위한 생각-사브의 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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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자동차 메이커 사브 역시 독특한 키박스 위치를 자랑한다. 사브의 키박스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기어 스틱 뒤쪽에 위치한다.

기존의 키박스 위치는 사고 시 손목의 부상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뛰어난 안전성을 자랑하는 다른 메이커도 키박스의 위치가 안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모든 모델의 키박스 위치를 바꾸는 과감한 결정을 내릴 기업은 사브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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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의 키박스 위치는 사브의 고집을 잘 보여주는 표본이다. GM의 산하에 있던 시절에도 사브는 적자까지 감수하며 “안전하고 강한 차”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브의 경영방침은 GM의 몰락과 함께 결국 사브를 부도의 운명으로 끌고 갔다.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이지만, 안전을 생각하는 그들의 기업정신은 사브 매니아들을 통해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전을 생각하는 고집이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누구나 다 하는 걸 못한다고?-볼보의 오토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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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사브와 함께 스웨덴의 대표 자동차 기업이자 안전의 아이콘으로 거론된다. 특히 안전성과 높은 가성비로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볼보는 웬만한 국산차에도 기본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헤드라이트의 “오토라이팅”기능이 없었다. 어째서 안전의 대명사인 볼보가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비인 헤드라이트 기능을 깜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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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하다. 볼보와 사브의 본국인 스웨덴은 오토라이트가 필요 없었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국가는 주간에도 전조등을 켜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낮에나 밤에나 주행할 때는 늘 전조등을 켜야 하기 때문에, 야간에만 라이트를 자동으로 켜주는 오토라이트는 있으나 마나 한 기능이었다.

문제는 오토라이트 기능은 불필요하다 라고 생각했던 볼보의 고집은 수출형에서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북유럽처럼 낮에 전조등을 켜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볼보는 무려 2013년까지 오토라이트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쯤 되면 북유럽민족의 고집이 북풍을 이겨내는 바이킹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GM대우 스테이츠맨,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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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GM대우는 호주에서 “홀덴 스테이츠맨”을 도입하여 국내 대형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하지만 너무 급했던 것일까, GM대우는 현지화 시키는 과정에서 크나큰 실책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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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쟁사의 플래그십은 풋 파킹 브레이크를 적용하였으나, 스테이츠맨은 구식인 핸드 파킹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문제는 핸드 파킹 브레이크의 위치에 있었다.

아무리 해외의 모델을 도입하였다 해도, 우핸들 모델의 핸드 파킹 브레이크 위치를 옮기지 않은 것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파킹 브레이크의 위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옵션에 있었다. 대우의 마지막 기함 매그너스가 가지고 있던 전동식 사이드미러 조차 없는 비참한 수준이었다.

이처럼 한때 “대형차의 지존”소리를 듣던 대우의 손을 거친 자동차라고 보기엔, GM대우의 플래그십은 수준미달이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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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는 스테이츠맨의 후속이었던 베리타스에서도 계속되었다. 파워 윈도우의 버튼은 여전히 기어 스틱 아래 설치되어있었고, 편의장비의 버튼은 여전히 우핸들 기준으로 되어있었다.
 
결국 베리타스는 2010년 쏘나타와 같은 가격까지 할인하는 치욕을 겪으며 단종된다.

황당하게도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는 대형 플래그십과는 어울리지 않는 “오너드리븐”을 지향했다. 당시에 국내 대형세단에서는 보기 드물던 “패들 쉬프트”가 장착되어 있었고, 실제로 주행성능 하나만큼은 체어맨과 에쿠스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평가도 받았다.

GM대우가 첫 단추를 잘못 넣은 전략에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나름 탄탄한 기본기로 인기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에디터 한마디

해보기는 해봤어?”
故정주영 회장이 남긴 말이다.

자동차 생산기지를 만들어 한국의 고유모델을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은 “포니”를 만들었고, 모두들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고집은 글로벌 판매 5위의 “현대기아자동차”가 되었다.

망상을 근거로 한 아집과 끈기 있는 고집은 다르다. “기술은 사면 된다”라고 말하던 故김우중 회장의 망상의 결과가 대우자동차를 어떤 결과로 만들었는지 보라.

최근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부회장의 고집으로 전기자동차 사업에 올인했다. 이 고집이 부디 한국을 전기차 시대의 선봉장으로 만들어 “이유있는 고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