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사 오면 된다고 했다가 망한 대우차 후손을 찾아서

대우 왕국이 무너진지 정확히 20년이 흘렀다. 쉐보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과거의 명예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마치 내부의 부패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진 청나라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는 아직 대우 왕조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남아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으로 청나라의 후손이자 황제였던 ‘푸이’가 타국을 떠돌며 영광의 시절을 추억하듯, 망국의 후손으로 남겨진 대우자동차 이야기를 지금부터 관람해보도록 하자.

ⓒ WIKIMEDIA COMMONS

1997년부터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의 연타석 홈런으로 대우자동차는 소형차부터 중형 차 시장까지 짜릿한 대성공을 거둔다.

과거 로얄 시리즈로 대표되는 대형차 시장의 강자였지만, 현대자동차의 그랜저가 등장한 뒤로 한동안 ‘만년 이인자’라는 암울한 시기를 보냈던 대우자동차에게는 그야말로 창사 이후 최고의 한 해라 말할 수 있었다.

기세를 몰아 해외시장으로서의 수출 계획을 본격화하며 대우자동차는 우즈베키스탄에 공장을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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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에게 IMF라는 위기가 찾아오면서, 영광이 시대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영광을 지키기 위한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SUV 라인업을 구축하는 등, 나름 공격적인 투자로 위기를 헤쳐나가려 했으나, 침몰하는 대우를 구하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대우의 몰락으로 왕국을 잃은 대우의 자동차들은 성공신화의 상징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대우’로 거처를 옮겼고, 머나먼 타국에서의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 UZDAEWO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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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땅을 밟은 대우 가문의 후손은 구형인 르망과 다를 바 없던 ‘씨에로’와 CVT 결함으로 악명을 떨친 ‘마티즈2’였다.

이미 한번 쓰디쓴 실패의 고배를 마신 둘은 GM대우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우즈대우에서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둔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아시아권 개발 도상국가에서는 이만큼 저렴하고 든든한 패밀리카가 없었기 때문에 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차로 인정받으며 2016년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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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로와 마티즈2가 중앙아시아에서 눈물겨운 성공의 결실을 만드는 동안, 대우 가문이 금지옥엽 키운 장남 매그너스와 차남 라세티는 스즈키 가문으로 국적을 바꾸게 된다.

이런 눈물겨운 일이 일어난 이유는, 대우와 스즈키를 손에 쥐고 있던 GM 때문이었다.

당시 북미시장에 진출해있던 스즈키는 GM으로부터 중형 세단과 프리미엄 세단 라인업의 공백을 지적받고 있었다.

때마침 대우가 기를 쓰고 만들어낸 매그너스와 라세티가 GM의 손에 들어오면서, GM은 둘을 일본으로 강제이민 시킨다.

그렇게 매그너스는 ‘스즈키 베로나’, 라세티는 ‘스즈키 포렌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북미시장으로 진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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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이름을 바꾼 둘은 북미시장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대우가 마지막까지 사운을 걸고 만들었던 라세티는 예전부터 GM에게 인정받으면서 세계로 수출되고 있었지만, 매그너스는 엄청난 인기는 예상 밖이었다.

한국의 싸구려 자동차가 스즈키에게 먹칠을 할 것이라는 걱정과는 달리, 낮은 연비로 한국에서 외면받았던 직렬 6기통 XK6 엔진을 가진 매그너스의 파워는 호평이 자자했다.

거기에 지금도 인정받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한국에서 자랑하던 프리미엄의 명성다운 고급 장비들을 가지고도, 1만 9999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니, 북미 소비자들에게 매그너스는 패밀리 세단으로서 정확히 먹혀들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진지하게 스즈키가 매그너스를 자신들의 일본에 역수입할 생각까지 했을까.

매그너스는 비록 일본의 이름을 달았을지라도, 힘든 시기를 보낸 ‘대우맨’들에게는 조선에 큰 힘이 되었던 故 손기정 선수와도 같았다.

대우자동차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대우자동차의 후손들은 여전히 세계를 달리고 있다.
늘 논란과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이인자라는 인식을 고치진 못했던 ‘대우자동차’.

하지만 이런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기아자동차가 여기까지 발전 할 수 있었고, 대우가 끝내 이루어 내지 못했던 ‘월드카’라는 꿈을 대신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지구의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대우의 유산을 위해, 가끔은 이렇게나마 원혼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