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스포츠카 레전드, 티뷰론입니다. 반갑죠?!

안녕하세요 티뷰론입니다. 아마 2030세대 이상이라면 다들 아실 거라 믿어요.(아마도?) 멋지고, 날렵하고 정말 현실 드림카로 군림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오늘은 오랜만에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요새 고성능 모델이 나와서 한창 핫하길래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거든요.

네? 이런 건 파릇파릇한 애들이 하는 거 아니냐고요? 물론~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들이 이런 곳에 나와서 어필하는 게 더 좋아 보이겠죠. 저처럼 노땅이 와 봐야, 추억 팔이라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말이죠, 좀 더 경력이 많은 선배로써, 우리나라 스포츠카 계보를 잇는 녀석들에게 초심이란 무엇인지 알려줄 좋을 기회라 생각해요. 그리고 겸사겸사 여러분 얼굴도 보려고 집 밖을 나선 거죠.

다행히 저는 실적이 좋지 못해서 쫓겨난 동료들과 달리 나름 유명인으로 은퇴해서 따박따박 연금 받아 가며 잘 살고 있어요.

흠흠. 인사는 이쯤 마무리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게요.

 

ⓒ hyundai, 출처 hyundai.com

저는 92년도에 처음으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했습니다. 그땐 인턴 시기여서 그저 달릴 줄만 알던 초짜였죠. 하지만 훌륭한 자동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했던, 오일이 펄펄 끓는 자동차였습니다.

처음엔 일반 승용차 부서에 배치받아서 평범하게 일하겠지 싶었는데, 정작 발령 난 곳은 스포츠카 부서로 되어있었습니다. (말표나 황소표 같은 오리지널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되게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이 “우리(현대차)도 이제 세계에 내놓을만한 스포츠카 한대쯤 가질 때가 되지 않았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뭐… 단순히 국산 스포츠카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고, 대한민국도 스포츠카 만들 기술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죠.

덕분에 저는 그 원대한 꿈을 받아들일 인재로 선발되었고, 다른 자동차들과 다른 특수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 하나 키운다고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습니다. 우선 제 외모(디자인)를 정하기 위해 1년 동안 2만 장이 넘는 아이디어 스케치가 오갔죠.

덕분에 제 코디를 담당했던 디자이너 분들은 매일 11시~12시 퇴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목욕탕…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고…

음… 좀 엉뚱하긴 하지만 성공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갖은 노력 끝에 나온 디자인에 바다 건너 미국 현대 캘리포니아 의상실(디자인연구소)에서 뽑아낸 HCD-2패션(콘셉트카)의 분위기가 결합되면서 어디에도 없는 저만의 외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 덕에 제 외모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뒤덮인 날렵한 상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덩치는 지금의 아반떼보다 작았지만, 스포츠 카이면서 동시에 세단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문짝은 2개지만 좌석은 4개였습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내부는 지금 봐도 독특한 운전자를 위주로 구성된 모습이었죠. 이게 은근 사람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효과적이었죠.

어찌 됐든 외모가 이렇다 보니, 제 이름도 스페인어로 상어를 의미하는 티뷰론이 되었습니다. 간혹 제가 아반떼 선배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아반떼-티뷰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분들도 계셨죠.

 

제 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우리나라 최초로 문짝 윗부분에 뼈대가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 스타일을 배웠고, 더 날쌘 움직임을 위해 요즘 MDPS라 불리는 EPS(전자식 속도 감응형 파워스티어링)라는 허리 돌리기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거 모르시는 분들이 많던데 빠르게 달리거나 곡선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기 위해 포르쉐로 넘어가서 무릎(서스펜션) 단련법을 배워왔습니다. 정확히는 같이 머리 맞댄(합작) 거죠.

제가 나름 스포츠카와 일상에서도 편하게 탈 수 있는 데일리카 성향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싶었기 때문에, 이쪽 분야의 원탑인 포르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 reddit, 출처 reddit.com

심장은 100% 우리나라 힘으로 만든 2.0L 베타 엔진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저와 경쟁할 예정인 미쓰비시 이클립스(140PS), 마쓰다 MX-6(118PS), 토요타 셀리카(140PS) 보다 강한 150PS의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흔히 동급 최강이라 말하는 그것이죠.

그리고 가장 빨리 달리면 시간당 200킬로미터 정도로 달릴 수 있고 0-100km/h에 도달하는데 8.6초밖에 안 걸렸죠. 지금이야 저보다 뛰어난 녀석들이 많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제가 최고였죠.

여담이지만 당시 베타 심장은 기름밥 먹는 양(배기량)이 1.6L, 1.8L, 2.0L 세 종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장착했던 2.0L 베타 심장은 오직 저만 사용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보다도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연구진)들이 은근 승부사 기질이 있었던 거 같아요. 처음 도전하는 거지만 기왕 만드는 거 최고로 만들자는…

어찌 됐든 92년부터 96년도까지 갖은 노력 끝에 고단했던 교육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무려 4년 2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이때 들어간 비용만 1200억 원이라고 하네요. 엄청나죠?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었을 때 제 몸값은 국민 세단이 자 좀 사는 아저씨들의 상징이었던 쏘나타 3와 비슷한 1210만~1350만 원이었습니다. 때문에 저와 함께할 사람들로 연예인, 예술가, 30대 이상 직장인 등 지갑이 두둑한 분들을 생각하고 있었죠.

잘 보시면 돈 좀 버는 분들이죠? 그러니까 제가 (소박한) 현실 드림카죠.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특히 더욱 멋있고 강력한 성능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요즘 N 브랜드의 퍼포먼스 패키지 같은, TGX 스타일을 추가로 준비했었죠.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체력을 길렀고, 바람을 더 잘 가르며 나아갈 수 있도록 어깨 뽕(리어 스포일러)도 달았죠.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벼운 알루미늄 스포츠 신발(휠)을 신어서, 발에 불이 나도록 빠르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숫자로 말씀드리자면 최고 속력 220km/h에 0-100km/h 도달 시간도 8.6초에서 8초로 크게 개선되었죠.

물론 제 몸값은 더 높아져서 1410만 원으로, 조금만 더 보태면 그랜저 선배와 팔짱을 끼고 다녀도 될 만큼 비싼 몸이었지만, 의외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외국 기자님들은 저를 보고 강력한 힘을 자랑하면서도 안락함을 겸비한, 대중성을 지닌 스포츠카라는 의미에서 스포츠 루킹 카로 불렀습니다. 뭐, 쉽게 말해 오리지널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스포츠카 느낌이 가미된 세단 정도 되겠네요.

영국의 오토카, 오토익스프레스 등 유명 잡지에서는 “포드와 피아트의 동급 경쟁 모델들보다 우수하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해외 언론은 저를 메인 사진으로 올리면서 “애틀랜타 올림픽에 나갔으면 금메달 감이다.”라는 낯간지러운 칭찬을 해줬어요.

미국의 카앤드라이버라는 잡지는 “스포츠카 다운 맛이 나고 강한 인상을 주는 외관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동급 차량들 중 큰 힘을 가진 엔진이 장점.”이라고 이야기했죠.

대체로 “이걸 한국이?”라는 분위기였어요.

아 참, 그리고 ‘96년도 파리모터쇼를 찾은 여성들이 뽑은 최고의 디자인상’을 받아, 아름답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자신감이 넘쳐흘러서 뭐든 도전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 hyundai, 출처 hyundai.com

그래서 켠 김에 왕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WRC 같은 랠리 대회에 나가, 97년도 WRC 3위, 포르투갈/그리스/뉴질랜드/중국 랠리 우승까지 홀몸으로 도장 깨기에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먼치킨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탓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레이싱 경기 주최 측은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매번 나오기만 하면 죄다 이기니까 관객들 떠나갈까 두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뷰론아, 미안한데 너만 좀 무겁게 해서 나오면 안 되니?”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동안 받은 트로피가 너무 많아서 집안에 두지 못할 지경이었기 때문에 나름 선심 쓰는 척하면서 몸무게 기준이었던 940kg을 저만 1020kg으로 높이는 패널티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 무림고수들이 무게 추를 차고 수련하듯…

이렇게 인기가 많다 보니, 요즘으로 치면 한 3~4천 수준의 몸값임에도 불구하고 5일 만에 1700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습니다. 그리고 7달 만에 국내외 합쳐서 3만 명이 저를 찾았습니다.(판매량)

 

덕분에 국내 라이벌이었던 기아 엘란과 함께 스포츠카 동호회 열풍을 일으켜, 1세대 동호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고, 튜닝 문화를 본격적으로 들여오는 계기가 되었죠.

특히 해외 언론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바람에 싱가포르, 홍콩, 호주, 뉴질랜드, 이집트 미국, 남미 등 해외출장(수출) 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칭찬하고,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점을 생각하면 90년대 전설이라 부를 만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 자동차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제가 한 끗발 날리는 자동차이기는 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습을 바꿔줄 필요가 있었죠.
 
네 맞아요 다들 아시는 페이스리프트입니다.
 
쉽게 말하면 얼굴 성형인데요, 너무 하나로만 우려먹으면 사람들이 질리니까 변화를 주는 것이죠그리고 겸사겸사 개선할 부분 있으면 개선하고요.

ⓒ hyundai, 출처 hyundai.com

저는 99년도에 스타일을 좀 바꾸고, 체력을 길러서 터뷸런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전에는 부드럽고 날렵한 인상이었다면, 터뷸런스로 넘어가면서 좀 더 남성적인, 근육질 몸매로 변신했죠.

그런데 제 외모와 차림새를 코치해주시던 분들은 이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티뷰론 시절이 너무 완벽한 디자인이어서 어디를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죠.

ⓒ hyundai, 출처 hyundai.com

여차여차해서 새로 바뀐 제 모습은 눈을 거미처럼 각각 2개로 분리하고, 뒤통수(리어램프)도 날 세운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에 제 코 부분을 좀 도드라지게 해서 좀 더 강해 보이도록 했죠.

그리고 전 단순히 외모만 그럴싸하게 바꾼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가볍고 달리기 쉽게 트레이닝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를 선택하시는 분들이 하드하게 달리는 걸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던 꿈의 쇼바.. 아니 SACHS(샥스)의 무릎(쇽업쇼버)을 적용해서 훨씬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아, 샥스가 뭐냐 면요, 독일의 변속기 명가 ZF 아시죠? 거기에서 파생된 쇽업쇼버 전문 브랜드예요.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이지만, 90년대 말에는 요게 비싸서 막 구매하기는 힘들었죠.

그밖에 ABS에 제동력 분배 장치까지, 달리기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값은 1,067만~1,41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저것 모두 마련했는데 이 정도면 엄청 혜자스러운 거죠. 안 그래요?

참…그때가 그립네요. 여러분과 함께 도로를 누비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그 기분, 콜라나 사이다의 청량감은 축에도 못 낄 정도였는데…

ⓒ a2goos

게다가 입맛에 맞게 심장을 더 강력하게 만들거나(터보, 압축비 설정), 외모를 더 꾸미는(외관 튜닝) 등의 재미난 경험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저는 터뷸런스로 2001년까지 일하고 가장 아끼는 후배인 투스카니한테 바통을 넘겨주고 편히 쉬고 있어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하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최초의 자동차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보면 죄다 해외 물먹은 녀석들이었지, 엘란도 사실은 영국에서 파견 나온 녀석이고 더블드래…아니 쌍용 칼리스타도 영국에서 왔고… 아무튼 국산 스포츠카 하면 저 티뷰론이 원조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지금 현역으로 뛰는 벨로스터 N이나 i30 N, 제네시스 G70 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자식농사 잘 지어놓은 거 같은 느낌이네요. 아마 제가 없었다면, 혹은 실패했다면 이 땅에 국산 스포츠카가 나왔을까요? 뭐, 나왔더라도 더 늦게 나왔겠죠.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지금 깨톡으로 우리 카니(투스카니)가 자기도 이야기하고 싶다고 난리네요. 뭐 그럴 만도 하죠 저 만큼이나 유명했던 녀석이니.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저 대신 투스카니를 만나보세요. 제가 가장 아끼는 후배거든요.

요즘 N 브랜드 때문에 떠들썩하죠? 20년 전에는 저로 인해 많은 운전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는 점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