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지나도 절대 녹슬지 않는 자동차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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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부식은 자동차를 서서히 망가트리는 암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자동차의 외부에 부식이 보인다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자동차의 하체나 내부까지 이미 상당한 부식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곰팡이처럼 자동차를 갉아먹는 부식을 막기 위해 기업과 소비자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철로 만들어진 자동차의 부식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득 “부식 걱정 없는 소재로 만든 자동차는 없는 걸까?”라며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이미 1960년대 부식되지 않는 자동차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자동차 기술 강국 독일에 만들어진 부식 없는 자동차 ‘트라반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공산 국가 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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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어진다. 폐허가 된 독일을 복구하며 우수한 공업력과 과학 기술로 ‘라인 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서독과 달리, 공산 국가였던 독일은 치안도 불안정했고 기술 수준도 현저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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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사람들은 폭스바겐, 벤츠, BMW 등 뛰어난 자동차 메이커의 다양한 라인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독의 사람들은 공산 국가 특유의 계획경제체제로 인해, 국가가 생산하는 단 하나의 자동차만 구입할 수 있었다. 즉, 선택권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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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었을 때, 동독 국민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자동차를 하고 있었다. 이 자동차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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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반트는 호르히, DKA, 반더러, 아우디 등이 합병한 ‘아우토 유니언’이 있는 ‘츠비카우’지역의 자동차 회사 ‘작센링’ 에서 태어났다. 1957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 자동차는 통일 직후인 1991년까지 380만 대가 넘게 생산되었다.

작센링은 1930년대부터 자동차 산업으로 잔뼈가 굵은 지역의 회사였지만, 서방 세계와 단절된 동독에서 자동차의 주 재료인 철판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센링은 철판보다 구하기 쉬운 자재를 찾기 시작했다.

녹슬지 않는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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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작센링은 FRP (섬유 강화 플라스틱)를 트라반트 차체에 사용하기 시작한다. FRP는 오늘날 유리섬유(GFRP)나 탄소섬유(CFRP) 등 다양한 종류가 자동차에 사용되고 있지만, 트라반트의 FRP는 조금 달랐다. 바로 동구권에서 넘쳐나던 목화 섬유를 이용해 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식물성 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트라반트는 철판으로 만든 자동차보다 가볍고 녹슬지 않으며, 섬유 강화 플라스틱의 특징인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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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철판과 달리 충격에 손상을 입으면 수리하기가 어려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에 색이 바래기도 했다. 때문에 동독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쿠크다스처럼 부서지는 모습을 빗대어 ‘골판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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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을 차체에 적용한 이유는 형편없는 엔진 출력 때문이기도 했다. 트라반트의 0.5L 2기통 2행정 엔진은 고작 18마력밖에 내지 못했다. 이후 부분 변경을 거치며 배기량을 595cc까지 늘렸지만 그래봤자 최대출력은 23마력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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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반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동구권에선 자동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동독 정부는 물자 부족 등의 이유로 트라반트의 생산량을 제한했지만, 주문하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보이며 1957년부터 1991년까지 약 310만 대가 판매되었다.

애증의 존재가 된 트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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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반트는 차량의 선택권이 적었던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와 같은 동구권에서 애용되었다. 군, 경찰, 소방 등 다양한 기관의 차량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소비자의 선택권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 픽업이나 왜건 등 라인업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서방세계의 자동차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트라반트는 위기를 맞는다. 60km/h의 속도도 넘기기 힘든 빈약한 성능과 심각하게 비좁은 내부 공간, 그리고 처참한 수준의 안전성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서구권 자동차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히 엔진오일과 휘발유를 섞어 사용하는 2행정 엔진은 유럽 평균의 4배에 달하는 배기가스를 배출했는데, 이 때문에 트라반트는 서독의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허가를 받지 않으면 서독에서 운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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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후 트라반트는 폭스바겐의 1.1L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등 여러 부분의 개선을 거쳤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기가스와 안전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로 1991년 단종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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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트라반트는 단종 이후 오히려 분단과 평화의 상징으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썩지도 않고 재활용하기도 힘들어 한동안 통일 독일의 골칫덩이였으나, 오히려 이 특징 덕분에 트라반트는 ‘패션 아이템’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트라반트는 절대 녹슬지 않는 차체처럼 오늘날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냉전 시대의 상징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에디터 한마디

트라반트가 생산되던 츠비카우에선 폭스바겐의 전기차인 ‘ID.3’가 생산되고 있다. 동독의 국민차를 만들던 공장에서 미래의 국민차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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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혹시 200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던 전기차 ‘트라반트 nT’가 전기차로 부활한 폭스바겐의 마이크로버스처럼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