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고 신차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게 최선인가 싶은 ‘닛산 Z 프로토’

ⓒ닛산

반일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일본차에 대한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브랜드에서 신차를 출시해도 신차에 대한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이 차량’만은 예외적으로 허용해 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브랜드니까.

이 모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9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1999년, 수입선다변화 조치(일제 직수입 금지)가 폐지되면서, 혼다 NSX, 닛산 GT-R, 도요타 수프라 등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모델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특히 소위 ‘오렌지족’들이 귀국하며 ‘이삿짐’으로 들고 온 일제 스포츠카는 매일 밤 압구정 거리를 빼곡히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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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모델은 ‘닛산 300z’였다. 스포츠카 특유의 낮고 넓은 육감 실루엣은 자동차 마니아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필자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Z의 매력은 자동차를 좋아하던 어린 꼬마를 ‘닛산 찬양론자’로 만들었다. 대학교 땐 진지하게 300Z 중고차 매물을 찾아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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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닛산이 변했다. 다 죽어가던 닛산을 살리고 전설의 ‘GT-R’를 부활시킨 카를로스 곤 회장을 헌신짝 마냥 내버리더니, 무미건조해진 자동차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닛산의 스포츠카들은 그야말로 ‘방치’되었다. 이런 닛산에 행동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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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등장한 ‘닛산 Z 프로토 (일명 400z)’도 그렇다. 닛산은 이 모델을 “복고풍 테마와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결합해, 수십 년에 걸진 Z의 역사를 아우르는 모델”이라고 소개했지만, 오랜 시간 z를 사랑한 마니아가 보기엔 조잡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그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이런 결과물을 만든 걸까?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뉴트로를 추구했으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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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디자인을 살펴보자, 닛산의 말대로 Z 프로토의 디자인에는 역대 모든 Z 시리즈의 디자인이 섞여있다. 마치 짬뽕을 만들 듯, 있는 재료를 모두 털어 넣은 듯한 비주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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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부 디자인은 240z(1세대)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특히 두 개의 반원으로 구성된 주간주행등은 1세대 Z의 원형 헤드램프를 연상케 한다. 다만, 이와 같은 디자인은 신형 ‘피아트 500’의 헤드램프에서도 볼 수 있는 구성으로, 그다지 신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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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 디자인은 이전 모델인 350z의 디자인과 유사하다. 닛산은 이전 모델을 ‘계승’한 디자인이라고 소개했지만, Z 프로토가 350z와 동일한 ‘FM 플랫폼’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니아들에겐 식상하기만 할 뿐이다. 똑같은 실루엣만 벌써 20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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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뒷모습은 봐줄 만하다. 역대 Z 시리즈 중 가장 매혹적인 뒤태를 가진 300z의 디자인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두 줄로 구성된 테일램프와 블랙 컬러로 마감된 디테일은 시크하고 엣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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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엠블럼을 테일램프 정중앙이 아닌 트렁크 리드에 부착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분명 300z를 계승한 뒷모습일 텐데, 왜 240z의 엠블럼 위치를 따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디자인에 줏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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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아마도 최근 유행하는 ‘뉴트로’ 트렌트를 올라타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닛산은 ‘뉴트로’의 핵심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단순히 이전 모델의 디자인을 계승한다고 해서, 다 뉴트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뉴트로의 핵심 가치는 ‘재해석’이다. 즉, ‘옛것’에 ‘새것’을 가미해야, 비로소 뉴트로가 되는 것이다.

동네 전파상에 전시된 낡은 턴테이블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오디오가 계속 동네 전파상에 머물러 있다면, 단지 촌스러운 고물에 불과하다. 이 오디오를 깔끔하게 닦고 손질해서 어울리는 인테리어에 장식해야 비로소 뉴트로가 된다.

ⓒ미니

자동차 중에서 ‘뉴트로’의 핵심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한 모델이 ‘미니’다. 미니는 특유의 동그란 원형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LED와 첨단 기술을 추가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이 때문에 과거의 미니와 지금의 미니를 비교하면,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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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Z 프로토의 디자인은 너무 조잡하다. 차라리 240z나 300z처럼 가장 유명한 Z 모델 하나만 골라서 재해석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쇼와 시대(80년대 일본)의 낭만을 표현하고 싶은 건지, 90년대를 풍미한 일본 스포츠카의 황금시대를 표현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신차…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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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Z 프로토의 가장 큰 문제는 ‘FM 플랫폼’이다. 물론, 잘 만든 플랫폼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닛산은 도가 지나치다. 350z 때부터 사용한 플랫폼이니 거진 20년을 사용한 ‘사골’ 플랫폼인데, 닛산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Z 프로토에 적용했다.

그나마 개선하려는 의지는 있었는지, 닛산은 Z 프로토에 첨단 경량 소재를 대거 적용했다. 이는 Z 프로토의 경쟁 모델인 ‘도요타 수프라’를 대적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프라처럼 섀시에 적용된 것은 아니기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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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발표에 따르면, 파워 트레인은 이전과 동일한 V6 트윈 터보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구체적인 제원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성능을 알 수는 없으나, 최근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수동변속기가 남아있는 점은 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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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내 레이아웃은 도저히 봐줄 수 없다, 전투기 조종석처럼 미래지향적인 실내 레이아웃을 자랑했던 300z 시절의 명성은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적용한 두 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는, 양복에 고무신을 신은 것처럼 실내 레이아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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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Z 프로토는 신차인데 ‘노티’가 난다. 2020년 모델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의 콘셉트카를 보는 것 같다. 물론, ‘합리적인 가격의 재미있는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Z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나, 오랫동안 신형 Z를 기대려온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에디터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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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카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닛산 스포츠카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기대했던 Z 프로토는 실망을 안겨 주었으며, 최근 닛산의 경영 상태를 보면 과연 Z 프로토를 제대로 양산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GT-R도 그렇다. 한때 포르쉐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재패니즈 고질라’는 이제 늙고 지쳤다.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후속 모델은커녕 루머조차 나돌지 않는다. 든든한 마니아층이 아니었다면 벌써 단종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아쉽지만, 꼬꼬마 시절부터 사랑했던 닛산을, 이제 놓아줄 시간이 된 것 같다. 국내에서 철수까지 한 마당이니, 이제 새 사랑을 찾아 떠나야 할 것 같다. 오늘 저녁, 소주 한 잔에 Z를 사모하던 마음을 담아 훌훌 털어버리련다.

아, 그래도 GT-R은 괜찮을지도 모르니 좀 더 기다려 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