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일반 승용차, 스포츠카, 상용차, 중장비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차량을 만들 수 있는 자동차 계의 ‘올스타’그룹이다. 그리고 다들 폭스바겐이 독일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독일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체코까지 유럽 전역을 휘어잡고 있는 다국적 그룹이다.

폭스바겐은 알면 알수록 의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브랜드다. 폭스바겐은 과연 어떤 기업들을 산하 브랜드로 가지고 있을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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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오토”라는 문구로 유명한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1930년대 등장한 브랜드로, 히틀러가 KdF(카데프)캠페인 진행을 위해 포르쉐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게 차량 개발을 맡긴 것이 시초가 되었다. 얼마 후 차량 하나가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폭스바겐 비틀이다. 개발 초기에는 히틀러가 ‘카데프 바겐’으로 불렀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완성한 포르쉐 박사는 ‘폭스바겐’으로 부르길 원했다고.

초창기 폭스바겐의 사명은 ‘The Gesellschaft zur Vorbereitung des Deutschen Volkswagens mbH’였으며 1938년 ‘Volkswagenwerk GmbH’으로 변경되었다.

폭스바겐은 독일어로 ‘서민의 차’라는 의미지만 간혹 ‘인민의 차’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독일어 사전에 민족, 인민, 백성, 서민, 민중 등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히틀러는 유태인과 더불어 공산주의를 매우 싫어했던 터라, ‘인민의 차’보다는 ‘서민의 차’가 정확한 번역이 되겠다. 특히 차량 보급률이 낮았던 시기에 많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차량을 공급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서민의 차’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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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ource→wikimedia(Marta fernadez montes)

일각에서는 1937년 독일정부의 어용노조 ‘독일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에서 설립한 것을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때문인지 초기 폭스바겐 엠블럼은 나치 문양과 유사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수공장으로 각종 군수물자를 생산했고, 종전 후 독일이 패전국이 되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연히 패전국의 군수물자를 생산했던 곳이기에 연합군 측에서 곱게 지나갈 리 만무했다. 특히 강제수용소에 감금된 15,000명을 쥐어짠 노동착취 행위가 적발되면서 언제 폐쇄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폭스바겐은 이러한 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독 경제로 편입되는 대신 전쟁 배상금의 일환으로 2만여 대의 자동차를 영국군에 납품하면서 연명하게 되었고, 경제재건의 중추로써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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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폭스바겐 비틀, 골프, 파사트 등 묵직한 히트작을 생산해 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초부터 각종 제조사들을 차근차근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덩치를 키워 자동차 계의 만물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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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고리로 유명한 아우디는 1909년 설립되었다. 창립자는 벤츠 엔지니어 출신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로, 초창기 경주용 모델을 개발하면서 기술력을 발전시켜나갔다.

1932년에는 아우디(Audi), 데카베(DKW), 호르히(Horch), 반더러(Wanderer) 네 개의 회사가 하나로 뭉쳐 아우토 유니온(Auto Union AG)이란 연합 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udi의 전신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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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끝나자, 아우토 유니온 생산공장은 대부분 폭격으로 가루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동독/서독으로 분단이 이루어지면서 동독 소재 아우디 츠비카우 공장 등이 소련군에 의해 강제 몰수되는 등 가시밭길이 계속되었다.

아우디는 하는 수 없이 공장을 바이에른 주의 잉골슈타트로 이전했고 이를 위해 미국의 유럽에 대한 경제 복구 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을 통해 자금을 수혈받게 되었다. 1950년대 말에는 입맛을 다시던 벤츠(다임러-벤츠)가 아우디의 주식 대부분을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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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부터 폭스바겐이 벤츠로부터 아우디의 엔진 설계 등 일부 기술력과 함께 지분 50%를 인수했고, 얼마 후 완전 인수를 통해 아우디는 폭스바겐의 자회사가 되었다. 1969년에는 폭스바겐이 NSU를 인수하면서 아우토 유니언과 합병시키는 작업을 거치게 되었고, 오늘날의 Audi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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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트는 스페인 브랜드로, 1950년 국립 산업 연구소(INI : Instituto Nacional de Industria)에 의해 SEAT (Sociedad Española de Automóviles de Turismo)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정확히는 1948년 스페인 정부와 은행 여러 곳의 합작이 시초다. 이 시기 INI가 지분의 51%, 은행 연합이 42%, 피아트가 7% 지분을 가진 구조였다.

10-source→wikimedia (Joost J. Bakker)

세아트는 설립 초기 이탈리아 피아트 차량을 주로 생산하며 자사 엠블럼을 붙여 판매했다. 1950년대 말부터 히트작 SEAT600이 등장해 1973년까지 약 80여만 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후 스페인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 절반 이상이 세아트일 만큼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시기 스페인 국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면서 흥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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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트 독자행보는 한참 뒤인 1980년대로, 론다, 이비자 등이 등장했다. 사실 이 시기 피아트와의 계약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진정한 독자 브랜드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독자 행보가 가능했다. 특히 폭스바겐과 포르쉐로부터 기술협력을, 이탈디자인 등으로부터 디자인을 도움받는 등 제휴관계를 적극 활용했다.

1982년 잘 나가던 세아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폭스바겐이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세아트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세아트에서 판매하거나 직접 생산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서 1986년에는 세아트 주식의 절반 이상을 폭스바겐이 가져가게 되었고, 1990년에는 완전 인수를 통해 아우디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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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제조사 중 하나다. 스코다는 체코산 브랜드로, 1895년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사 중 하나다. 스코다는 1895년 자전거 회사 ‘로린&클레멘트’로 시작해 1905년 자동차를 제조하기 시작했으며 1차 세계대전부터 군사무기를 만드는 등 다른 유럽 제조사들처럼 차근차근 발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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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가 시작되면서 국영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우수한 품질로 공산권 내 유명 메이커로 199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냉전 이후 체코 정부가 스코다 민영화를 추진했고, 폭스바겐은 이를 놓치지 않고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1994년 폭스바겐은 스코다 주식의 60%를 수중에 넣으며 대주주가 되었고 1995년에는 7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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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자회사가 된 스코다는 실용성 위주의 기본기에 집중한 차량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 오늘날 독일, 동유럽권을 중심으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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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는 1919년 설립된 럭셔리 자동차 제조사이며, 창립자이자 엔지니어였던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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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까지만 해도 고배기량 럭셔리 차량 수요가 있어 원활한 운영이 가능했지만, 경제 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2년 동안 100대도 채 안 되는 처참한 판매량을 보일 정도로 경영악화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1931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벤틀리를 롤스로이스가 인수했고 1997년까지 60여 년 동안 롤스로이스의 충실한 부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도중에 영국의 중공업 전문 기업 비커스(Vickers)가 롤스로이스를 인수하면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이 기업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1998년 여러 문제로 인해 비커스가 롤스로이스와 자회사 벤틀리를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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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BMW와 폭스바겐이 럭셔리 브랜드를 인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서로 두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쟁 도중 폭스바겐이 롤스로이스 관련 지재권 일부를 사들이며 견제를 하는 등 다양한 사건이 벌어졌고 결론적으로 롤스로이스는 BMW가, 벤틀리는 폭스바겐이 인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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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품질과 예술성을 고집하다 여러 번 고꾸라진 경험이 있는 럭셔리 고성능 브랜드다. 1909년 이탈리아 예술가 집안 태생인 프랑스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설립했다. 설립 이후 차량 디자인, 부품, 성능 모든 부분에 있어 예술성을 담으려 노력해 그 가치만큼은 인정받았지만,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이 울고 갈 만한 가격으로 인해 명성과 다르게 많이 판매되지는 않았다.

부가티는 창립자와 그의 아들이 사망하면서 잠시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1939년 아들 진 부가티 (Jean Bugatti)가 부가티 생산 공장 근처에서 테스트 드라이브를 하다 사망했고 여기에 1947년 창립자가 사망하면서 심각한 경영악화가 이어졌고, 결국 1952년 문을 닫게 되었다.

23-source→wikimedia(Spurzem)

다행히 1980년대 슈파카가 유행할 당시 이탈리아 재력가에 의해 Automobili Bugatti SpA가 설립되어 1996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부가티 제2의 역사가 이어졌다. 몇 년 후인 1998년에는 부가티의 예술성을 지키고 싶어 했던 폭스바겐 회장이 부가티를 부활시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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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그룹은 부가티만큼은 예술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가격, 연비를 이유로 차량 품질을 타협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수십억 원에 이르는 가격과 더불어 잘 판매되지 않는 등 만년 적자 상태다. 하지만 부가티의 예술성만큼 잘 이어가고 있어 이미지메이킹 역할은 잘 해내고 있다.

여담으로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은 부가티의 진정한 가치를 논할 때, 에토레 부가티 시절 부가티 출시 모델을 최고로 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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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표 슈퍼카로 유명한 람보르기니는 이탈리아 엔지니어 출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가 1963년 설립했다. 그는 이탈리아 왕립 공군 엔지니어로 복무하며 우수한 정비기술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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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기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군용차량들을 트랙터로 개조하는 사업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거대 부호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런 그가 자동차 산업으로 뛰어든 계기로 페라리의 거만함이 한몫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가 잔고장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페라리 본사에 문제 해결을 위한 의논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비아냥 섞인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격분해 페라리를 능가하는 차량을 만들겠다는 분노 섞인 목표로 이어졌다.

27-source→wikimedia(Dan Lindsay)
28-source→wikimedia(Damian Morys)
29-source→wikimedia(Alexander Migl)

람보르기니가 설립된 이후 1년 만에 페라리를 능가하는 350GT가 등장했고 이를 기점으로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가야르도, 우라칸 등 명차를 생산하게 되었다. 한창 잘 나가던 람보르기니는 경영난 등으로 잠시 크라이슬러에 매각되어 바이퍼 엔진 제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1998년에는 폭스바겐이 인수해 폭스바겐 그룹의 슈퍼카 포지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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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193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학박사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에 의해 설립되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포르쉐 엔지니어링 사무소’설립을 통해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으며, 히틀러와 인연을 맺으면서 폭스바겐 비틀(카데프 바겐)개발, 전차를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전 이후 전범으로 낙인찍혀 수 년 간 복역 후 출소해 1951년 중병을 얻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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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1990년대 초반까지 무난한 운영을 해오다 경영난에 직면하면서 당시 대주주였던 폭스바겐이 경영에 개입해 간신히 살아났다. 사실 폭스바겐은 비틀을 인연으로 포르쉐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이어오는 등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하극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이 시작되었다. 폭스바겐 주식을 5% 가지고 있던 포르쉐는 20%까지 추가 구입했고, 그래도 부족했는지 2007년 30.9%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주식 분량만 보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08년 대주주인 폭스바겐을 인수한다는 폭탄선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유럽 각국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때마침 금융위기와 석유값 상승이 연달아 터지면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 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폭스바겐은 포르쉐의 자동차 생산 사업부 주식의 49.9%를 인수했지만 법률상 문제로 합병까지 진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나머지 사업부를 모두 인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일로 인해 2013년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 법을 개정해 중대 의사결정에 대해 80% 이상 의결권을 가져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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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와 비슷한 발음의 두카티는 오토바이 회사다. 바이크계의 페라리로 불리기도 하는데, 1926년 두카티 형제에 의해 설립되었다. 원래 사명은 Società Scientifica Radio Brevetti Ducati로, 진공관, 콘덴서 등 무선기기에 필요한 부품 등을 판매하던 전파상 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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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경제난이 찾아오자, 뜬금없이 자전거에 엔진을 부착한 형태의 오토바이 쿠춀로(Cucciolo)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전혀 상관없는 업종으로 변경한 것은, 전후 이탈리아 국민들이 얇은 지갑 사정으로 인해 값싼 이동 수단을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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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 두카티는 1950년대 초반부터 기술 개발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 급격한 기술성장을 바탕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우디가 두카티를 13억 달러(현재 원화로 약 1조 3천억 원)에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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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니아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트럭 브랜드다. 1911년 철도 차량 및 트럭 제조사 바비스(Vabis)와 자전거 및 자동차 제조사 마스킨AB스카니아(Maskin AB Scania)의 합병으로 탄생한 스카니아 바비스(Scania Vabis)가 시초다. 보통 1911년을 스카니아 설립 연도로 보지만, 간혹 바비스의 설립연도인 1891년으로 보기도 한다.

1920년대 초 스웨덴 대부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으로 유명한 발렌베리(Wallenberg)가문이 재정난에 빠진 스카니아를 인수해 운영해 왔으며 1932년 독일의 마지루스(Magirus)사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등 상용차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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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카니아는 윌리스 지프와 폭스바겐 비틀 두 차종의 총판을 맡아 막대한 이윤을 챙겼고, 이를 바탕으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성능 좋은 스카니아 표 디젤엔진을 개발하게 되었다.

39-source→wikimedia (Herranderssvensson – Eigenes Werk)

1968년에는 사브(SAAB)가 스카니아를 인수해 사브-스카니아 AB로 변경되면서 차량 출고 시 SCANIA 브랜드명으로 출고되었다. 1999년에는 볼보(Volvo) 트럭이 스카니아를 인수해갔고, 2008년에는 폭스바겐이 지분 18.7%와 의결권 34%를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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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MAN)은 우리가 길에서 간혹 보이는 대형 트럭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이며 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아우크스부르크-뉘른베르크 기계 공작소)의 약자다.

41-source→MAN Marine Engines

설립 일은 18세기인 1758년으로,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설립 당시 ‘세인트 안토니’ 철공소라는 기업명으로 최초의 중공업 회사가 되었으며, 1808년 세인트 안토니를 포함한 세 철공소가 연합해 철광 무역회사로 합병해 GHH로 사명을 바꿨다. 그리고 1921년 MAN의 전신인 M.A.N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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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은 독일 최초의 신문용 로터리 인쇄압축기, 최초의 냉동기 개발, 디젤엔진 개발, 최초의 모노레일 개발, 최초의 철교 건설 등에 참여해 세계 역사를 바꾸는데 기여한 기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수준 높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나치의 U보트 잠수함용 디젤엔진을 만드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전후 막대한 손실을 입고 연합군 통제하에 놓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43-source→wikimedia (Frank Schwichtenberg)

세월이 흘러 1986년 사업구조 개편으로 현재의 MAN 그룹으로 명칭 변경이 있었다. 사실 모기업인 GHH를 사명으로 써야 했지만 M.A.N의 디젤엔진 관련 능력과 그 동안 GHH 그룹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 M.A.N이 오히려 주체로 떠올랐다.

이후 폭스바겐이 지분 획득을 통해 2011년 MAN을 정말 인수하면서 상용차 파트에 속해있다.


폭스바겐이 인수한 회사 11곳. 여기도 폭스바겐?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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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관련 문의 : carder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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