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외관과 차량 특성상 ‘실용성’이 강조된 차로 널리 인식되어 있는 해치백, 요즘은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간혹 분명 해치백인데 날쌘 녀석들이 보인다. “엔진 튜닝 했나?” 싶을 만큼 터프한 움직임을 뽐낸다.
이 녀석들의 정체는 바로 ‘핫 해치(Hot Hatch)’다. 핫 해치는 해치백에서 파생된 차종으로 외관은 해치백이지만 고성능 엔진을 탑재해 강력한 주행성능을 갖추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륜구동 해치백이 인기가 많았고, 제조사들은 여기에 스포츠 감성을 더해 보다 높은 성능과 더불어 조향 성능 등 주행과 관련된 부분을 강화했다.
핫 해치의 시작은 모나코에서 개최되는 ‘몬테 카를로 렐리’에 출전해 1964~1967년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미니 쿠퍼S (Mini Cooper S)다. 물론, 핫 해치라 부를만한 성능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핫 해치로 부르지 않지만, 소형 차량에 스포츠 감성을 불어넣는 시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핫 해치를 시도했던 모델’ 정도로 볼 수 있다.
원조 핫 해치는 피아트 산하 생카(SIMCA)의 ‘SIMCA 1100 Ti’다. 1974년 등장한 SIMCA 1100의 고성능 모델로, 82마력(6,000rpm), 10.6kg.m(3,200rpm) 성능의 1.3L OHV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 169km/h, 제로백 12초를 기록했다. 이전 모델에 비해 40% 향상된 출력과 985kg이라는 작은 덩치 덕분에 넉넉한 출력이었다.
겉 보기에 세단 모델처럼 보이지만, 해치 게이트를 시작으로 2열 접이식 좌석까지 갖춰 해치백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SIMCA 1100Ti의 등장으로 핫 해치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게 됐다.
얼마 후 르노에서도 핫 해치 모델 ‘Renault 5 Alpine(알파인)’을 출시했다. 당시 Alpine이라는 모델을 크라이슬러 유럽 지사에서 내놓는 바람에 대외적으로 ‘Renault 5 Gordini(골디니)’로 부르기도 한다. Gordini는 해치백 모델인 Rnault 5의 파생모델로 SIMCA 1100 Ti 다음으로 출시된 핫 해치다.
출력은 94마력(6,400rpm), 11.7kg.m(4,000rpm) 성능의 1.4L Sierra OHV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 172km/h에 제로백 10.7초를 기록했다. 역시 허약체질로 보일 수 있지만, 공차중량이 850kg으로 상당히 가벼웠기에 가능한 주행 능력이었다.
1970년대 중반 폭스바겐 1세대 골프 GTI다. 1975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하지만 정식 판매는 1년 미뤄졌는데, 품질 및 신뢰성 측면에서 보강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엔지니어들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능은 드디어 ‘핫 해치’라 부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110마력(6,100rpm), 14.3kg.m(5,000rpm) 성능의 1.6L SOHV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 182km/h, 제로백 9초를 자랑했다. 당시 소형차+고성능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공차중량이 810kg으로 상당히 가벼워 Golf GTI의 성능은 필요 이상으로 넘쳤다.
덕분에 5천 대만 생산하고 끝내려 했던 계획을 변경해 현재까지 세대를 거듭하며 생산되고 있으며, 출시 당시 5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
이 시기 Golf GTI에 의해 ‘핫 해치’의 기준이 성립되었다.
FF타입 해치백이어야 하며, 160km/h (100mph)이상 속력을 낼 수 있는 모델 이것이 초기 핫 해치의 마지노선이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차량 성능이 높아지면서 200마력 이상 3도어 해치백들을 핫 해치로 부른다.
물론 누군가 “핫 해치 조건은 이렇다!”라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수 십 년 동안 핫 해치 모델들이 발전해 오면서 제조사와 더불어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한 핫 해치의 기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핫 해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제조사들 또한 핫 해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사실 핫 해치라는 용어는 1980년대 초 영국 언론을 통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다.
대표적으로 ▲Ford Fiesta XR2 ▲Peugeot 205 GTI ▲Mitsubishi Colt 1600 Turbo ▲Volvo 480 Turbo 등이 1980년대 핫 해치 계보를 이어갔다. 이들 모델의 성능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Ford Fiesta XR2
▲FF타입 ▲1.6L OHV엔진 탑재 ▲85마력(5,500rpm) ▲12.6kg.m(2,800rpm) ▲최고속도 171km/h ▲공차중량 800kg ▲제로백 9초대
Peugeot 205 GTI
▲FF타입 ▲1.6L SOHC엔진 탑재 ▲105마력(6,250rpm) ▲13.5kg.m(4,000rpm) ▲최고속도 193km/h ▲공차중량 850kg ▲제로백 8.6초
Mitsubishi Colt 1600 Turbo
▲FF타입 ▲1.6L SOHC엔진 탑재 ▲125마력(5,500rpm) ▲18.6kg.m(3,000rpm) ▲최고속도 185km/h ▲공차중량 880kg ▲제로백 9초
Volvo 480 Turbo
▲FF타입 ▲1.7L SOHC엔진 탑재 ▲120마력(5,400rpm) ▲17.9kg.m(3,300rpm) ▲최고속도 200km/h ▲공차중량 1,040kg ▲제로백 8.6초
앞서 언급한 핫 해치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지금 보면 낮은 출력이지만, 당시 출시되었던 차량들과 비교해 나름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핫 해치 모델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ia Pro_Cee’d GT를 시작으로 i30 N, Veloster N이 있다. 이들의 성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Kia Pro_Cee’d GT (2016년형)
▲FF타입 ▲1.6L DOHC엔진 탑재 ▲204마력(6,000rpm) ▲27.5kg.m(1,750~4,500rpm) ▲최고속도 230km/h ▲공차중량 1,359kg ▲제로백 7.7초
i30 N (2017년식)
▲FF타입 ▲2.0L DOHC엔진 탑재 ▲275마력(6,000rpm) ▲36.0kg.m(1,500~4,700rpm) ▲최고속도 250km/h ▲공차중량 1,429kg ▲제로백 6.1초
Veloster N
▲FF타입 ▲2.0L DOHC엔진 탑재 ▲275마력(6,000rpm/예상) ▲36.0kg.m(1,450~4,700rpm/예상) ▲최고속도 250km/h ▲공차중량 1,429kg ▲제로백 6.1초
여기서 Veloster 1.6L 일반 모델의 경우, 핫 해치로 분류하기도 한다. 3도어, 200마력 이상의 출력 모두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SUV와 세단 모델이 해치백에 비해 ‘자가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며 주변의 시선을 고려한 탓에 인기가 높지는 않다. 오죽했으면 ‘해치백의 무덤’이라고 부를까? 그래도 개성 있는 디자인, 실용성, 가격 모두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수요는 존재한다.
한편 유럽은 현대차가 전략 차종으로 해치백 모델을 내놓을 정도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핫 해치의 수요 또한 많은 편이다.
핫 해치만큼이나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웜 해치(Warm Hatch)라는 용어가 있다. 핫 해치로 분류하기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해치백보다는 높은 성능의 차량을 일컫는다.
웜 해치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일반적으로 100~150마력 사이의 해치백 모델들이 해당된다. 대표적으로 Mini Cooper가 있다. 제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Mini Cooper
▲FF타입 ▲1.5L DOHC엔진 탑재 ▲136마력(6,000rpm) ▲23.5kg.m(1,250~4,000rpm) ▲최고속도 207km/h ▲공차중량 1,220kg ▲제로백 8.2초
최근에는 핫 해치를 뛰어넘은 하이퍼 해치(hyper Hatch)가 출시되고 있다. 사실상 외관만 해치백일 뿐 스포츠카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모델로 AMG A45 4MATIC이 있다. 제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MG A45 4MATIC
▲2.0L DOHC엔진 탑재 ▲381마력(6,000rpm) ▲48.3kg.m(2,250~5,000rpm) ▲최고속도 249km/h ▲공차중량 2,050kg ▲제로백 4.2초
이렇다 보니 해치백은 슈퍼카와 유사한 성능 경쟁에 돌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정된 크기에 얼마나 더 많이 욱여넣어 더 높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지, 제조사들 간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본문을 읽다 보면 주행 성능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핫 해치는 스포츠 감성이 더해진,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특별한 모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능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실용성을 뛰어넘어 더욱 개성 넘치는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있어 핫 해치는 아주 매력적인 차량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판매량이 적다 보니 나름의 유니크함도 겸비하게 되어 금상첨화 아닐까?
뜨거운 녀석, 핫 해치 이야기
글 / 다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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