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ource→netcarshow

1960년대 후반부터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 우리나라 경제 대동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1일 생활권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의 등장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자동차를 찾기 시작했고, Fiat 132는 이를 충족하는 몇 안 되는 모델이었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외부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까지 겸비해 그때 그 시절 최고의 차량이었다.

2-source→wikimedia (Vincent van Zeijst)
3-source→Lamborghini

Fiat132는 1972년 Fiat125의 후속 모델이며, 당시 기준으로 후륜구동 D 세그먼트에 해당된다.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Marcello Gandini(마르첼로 간디니)가 담당했다.

Marcello Gandini의 대표적인 차량 디자인은 ▣Alfa Romeo Montreal ▣Lamborghini Jarama ▣Lamborghini Miura ▣Lamborghini Urraco ▣Ferrari Dino 308GT4 ▣BMW 5 Series (E12) ▣Bugatti EB110 등 굵직한 모델들이다.

4-source→steemit

내부 인테리어는 ‘심플’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붙어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용성에 좀 더 무게를 둔 것 같은 느낌이다. 계기판, 글로브 박스 등 일부분에 목재 장식을 추가해 고급스러움을 나타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오래전 생산된 모델이기 때문에 지금 보면 투박할 뿐이다.

당시 피아트의 플래그십 세단은 Fiat130이었지만, 70년대 후반 단종되면서 Fiat 132가 플래그십 세단 자리를 물려받았다.

5-source→Gumtree

Fiat132 제원은 ▣전장 4,420mm ▣전폭 1,645mm ▣전고 1,421mm으로, 포드 코티나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으며 ▣무게 1,094kg이다. 엔진은 1.6L~2.0L 가솔린엔진과 2.0~2.5L 디젤엔진 총 6종이 있고, 4~5단 수동 변속기, 3단 변속기기가 트림 별로 적용되었다.

출력은 1.8L 가솔린 DOHC 엔진 기준 ▣113PS(5,600rpm) ▣15.0kg.m(3,400rpm)이다. 최고속력은 170km/h로 빠른 편이었다.

6-source→wikimedia (Der Boxermotor)

이 모델은 1981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스페인 세아트(SEAT)
▣남아공 현지 업체와 알파 로메오 남아공 지사(Alfa Romeo South Africa)
▣폴란드 FSO
▣한국 기아에서 면허생산이 이루어졌다.

단종될 때까지 80만 대가 판매되었으며, 그중
▣65만 대는 이탈리아
▣10만 대는 스페인
▣4만 5천 대는 남아공
▣5천 대는 한국에서 생산되었다.

7-source→wikimedia (Turbojo)

피아트의 DOHC는 Fiat Twin Cam Engine으로 불리며, 1966년부터 2000년대까지 생산된 나름 유명한 엔진이다. 페라리 엔지니어 Aurelio Lampredi(아우렐리오 램프레디)에 의해 최초 개발된 엔진으로 알려져 있고, Fiat 124 Sports Coupe에 처음 적용되었다. 당시 DOHC를 적용하고 있던 알파 로메오와 재규어의 엔진은 복잡한 밸브 구조로 인해 유지 보수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8-source→wikimedia (The Car Spy)

피아트는 특허 출원한 새로운 밸브 제조방식으로 비용과 성능 둘 다를 잡게 되었다. 이후 페라리와 피아트 차량 일부에 적용되었던 Dino V6 엔진에 이식되었으며, World Rally Championship(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 등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활약을 펼쳤다.

요컨대, 명품엔진이라는 의미이며, Fiat 132에도 적용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우수한 모델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9-source→wikimedia (granada_turnier)

Fiat 132는 우리나라에서 1979년 초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다. 사전계약일은 1978년 12월 1일이며, 현대 코티나 마크Ⅳ, 새한 레코드가 경쟁 모델이었다. 가격은 651만 원으로 두 경쟁 모델 보다 비쌌으며 그라나다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당시 그라나다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비슷한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비싼 모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0대 사전계약이 완료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현대차는 그라나다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0-source→flickr (peterolthof)

기아차는 피아트와 기술제휴를 통해 월 600대 생산 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출시 모델은 2.0L I4 모델로 ▣115PS ▣16.0kg.m 출력에 ▣최고속력 171km/h를 이었고 ▣5단 수동 변속기 ▣유압 파워스티어링 휠 ▣실내 소음방지 장치까지 적용되었다. 이때 피아트와 기술제휴로 얻은 정보 덕분에 부품 및 일부 핵심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11-source→BASF Automotive Solutions(예시사진)

게다가 부식 방지를 위해 추가 개발비 20억 원을 들여 컴퓨터 도장 방식을 도입했고, 특수 수조에 전류를 흘려 도장하는 전착도장(electro deposition coating)으로 기존 모델에 비해 2배 정도 내식성을 갖추게 되었다.

Fiat 132가 본격 생산에 돌입하기 직전, 정주영 회장은 기아차가 피아트와 손잡고 기술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피아트의 니콜로 지오이아(Nikolo Gioia) 사장과 만나 자동차 및 선박용 컴퓨터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피아트는 기아차뿐만 아니라 계열사인 아시아 자동차와도 인연이 깊은데, 버스 생산을 위해 피아트제 버스 섀시를 도입했으며 MAN의 디젤엔진을 얹어 1,500대 가량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12-source→steemit

출시 당시 기아차는 피아트와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Fiat라는 명칭 추가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피아트는 현지 국산화율이 40% 이상 넘어갈 경우 성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해당 모델이 피아트의 플래그십 세단이기 때문에 질 낮은 상품이 출고되면 명성에 흠집이 난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기아차는 Fiat 132의 국산화율이 60.8%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이때문에 초기 출고 차량들은 ‘Fiat132’가 아닌 ‘132 | 2000’으로 숫자만 표시되었다.

하지만 피아트의 고집은 이내 꺾이게 되었다. 규정보다 높은 국산화율을 달성했지만 이탈리아 현지 생산 공장에서 제조하는 모델과 품질 측면에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아차 관계자에 따르면 “국산화율이 높아도 품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스페인도 Fiat 132를 생산 중이었는데, 품질 미달로 인해 Fiat 대신 Siat라는 이름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이때 피아트로부터 인정받은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13-source→국가기록원(예시사진)

하지만 1981년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기아차는 Fiat 132를 강제 단종하게 되었고, 피아트와 국제 소송이 진행되는 등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역사학자들과 자동차 전문가들은 “전두환 정권의 그릇된 정책만 아니었다면, 상당기간 판매되었을 명차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담으로, 1970년대 후반 콜택시 대규모 도입 사업이 있었는데, 새한의 레코드로얄이 1,200대, 현대차 코티나 마크Ⅳ가 300대 도입되었다. 이때 기아차의 Asia Fiat 132도 도입 사업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부품 공급 지연으로 결국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택시 도입으로 인한 희소성을 잃은 두 모델과 달리 희소성이라는 장점을 얻게 되어 실제 출고가 이루어질 때 오히려 인기가 많았다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당시 박근혜와 박근령 두 영애가 15년 11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날 때 Fiat 132를 타고 이동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Fiat 132. 당시 고급 승용차로써 그라나다에 이어 부의 상징이었다. 보통 국내 면허생산 자동차를 이야기한다면, 벤츠, 포드, 미쓰비시 등을 생각할 텐데 기아차의 사례처럼 피아트도 있다. 지금 보면 올드 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급 세단이지만 당시 이 차량이 지나가면 휘황찬란했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차량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차량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 올드카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Fiat 132와 같은 디자인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 현대적 재해석으로 과거의 모델들이 다시 등장하면 오히려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기아차가 생산한 이탈리아 플래그십 세단 피아트 132

글 / 다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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