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내용은 독자 한 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독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연재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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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유일하게 한대 있던 자동차는 봉고였다. 부모님께서는 봉고차에 야채부터 옷까지 다양한 물건을 싣고 거리에서 장사를 하셨다. 쉬는 날이면 물건을 떼러 다닐 때도 아버지와 동행하여 일을 돕기도 하고. 가끔은 온 가족이 탑승하여 여행도 다녔다.

봉고차는 5명이 앉을 수 있는 1열 2열이 있는 차였는데, 나는 특히나 조수석에 앉는 걸 좋아했다. 탁 트인 시야와, 도로를 달리는 다른 자동차들에 비해 우리 집 봉고차가 높고 컸기 때문에 옆에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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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께서 학교까지 태워주셨는데, 일부러 배가 아픈 척 연기를 하고 학교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문구점 앞에 내려달라고 소리쳤다. 새로 사귀게 될 친구들에게 봉고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 창피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우리 집 차를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날 처음 느끼게 된 그 기분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 차를 타고 다니는 아버지마저…

그 후로 친구들과 거리를 돌아다니면 도로 쪽으로 걸어 다니지 않았다. 이유는 동네 곳곳을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혹시나 친구들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될까 봐… (너무 못난 아들이었다.. 지금도)

그땐 아버지의 직업이 창피했던 걸까…우리 집 차가 승용차가 아니어서 창피했던 걸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께서는 줄곧 봉고차로 장사를 하셨고, 가정용 차량으로도 봉고차를 계속 이용하셨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회사를 취직하진 못했다. 대신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동네에 작은 식당을 하나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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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필요한 부식거리를 직접 사러 다니고 하다 보니 작은 차가 한대 필요했고, 그렇게 소형차 마티즈를 장만했다. 야채장사를 하시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신선한 야채 반찬을 식당을 찾는 손님들께 제공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동네에서 단골손님들이 늘어갔다.

가게 이름이 옆 동네까지 소문이 났을 무렵, “체인점을 열어볼 생각이 없냐?”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물론 욕심이 없진 않았기 때문에 체인점을 확장시켜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체인점 관련 사업으로 자주 만나던 4명은 전부 “김 사장, 이 사장, 최 사장, 문 사장” 나까지 포함하면 5명의 사장님들로 서로를 칭해주며 자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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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만남에서 “어이 김 사장, 취미 없어? 볼 치러 안 다녀?”라고 묻더라. 골프를 쳐본 적 없다고 하니, 앞으로 함께 다니면서 건강을 챙기자고 하더라. 스크린 골프로 조금씩 배웠다. 개인 골프 채가 필요하니 하나 장만하라는 권유에 흔쾌히 구입했다.

“어이 김 사장, 볼 치러 다니는데 골프 클럽 싣고 다닐 수 있게 차 좀 바꿔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들었고, 매번 가게에서 자동차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는 [이참에 소형차 보다 조금 큰 차로 바꾸어요~]라고 남편 기를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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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에겐 장사가 안 될 때를 미리 대비하여 가게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여유자금을 항상 모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신차 구매는 꿈도 못 꾸고 비교적 저렴한 준중형의 (세라토)를 중고로 구입하게 되었다. 가끔 취미 삼아 골프를 다닐 때, 내 골프클럽 하나쯤은 거뜬히 싣고 다닐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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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치기 전에는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차를 구입하고 나서는 모임 때마다 골프클럽을 싣고 차를 타고 모임에 참석했다. 강남의 고깃집에서의 만남이 많았는데, 갈 때마다 발레파킹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서비스인 줄 알았는데, 주차비용 2천 원은 항상 현금으로 준비해야 하더라.

식사를 맛있게 먹고나서 발레파킹 기사님께 차량 번호를 말하고 기다리고 있자면, 항상 내 차를 가장 마지막에 가져다주었다. 매번 그랬다. 내 차는 항상 끝자리 구석에 주차가 되어있었다. 우연일 수 있는 일이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내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서 항상 구석에 주차하고 늦게 빼주는 것일까…?)라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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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만나던 문 사장님의 차는 ‘체어맨’이었다. 차량 한대로 이동할 때는 항상 문 사장님 차를 얻어 타곤 했었는데, 모임에서 유일하게 술을 안 하던 나는 우리 집과 가까이 살 고 있던 문 사장님 차를 대신 운전하고 집으로 태워다 주고 나도 편하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나만의 오해인 것일까? 문 사장님 차를 타고 운전을 할 때는 운전이 참 편안했다. 차가 좋아서 승차감이 편안한 것도 있었지만, 도로의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는 뜻이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도 덜했고, 4차로에서 갑자기 1차로를 타야 할 때도 방향지시등 한두 번 켜고 쉽게 차선 변경을 할 수 있었다.

소형 마티즈를 타고 다닐 땐, 차선 변경이 가장 어려웠는데 큰 차를 탔더니 더 쉬워졌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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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 자녀가 2명이 생겼다. 아들 녀석과 너무 이쁜 딸까지. 4살 터울의 남매라 사이도 좋고 오빠가 동생을 잘 챙긴다. (기특한 녀석..)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아침에 같이 손을 잡고 등교를 하고 손을 잡고 하교를 한다.

6학생의 아들이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다. 이날만큼은 근사한 선물을 사주기 위해 아내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찾아갔다.

아들 녀석과 딸아이가 손을 잡고, 그 뒤를 친구들 여럿이 따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동생 손을 뿌리치고 다른 방향으로 친구들과 뛰어가는 것이었다.

또래 6학년생들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지만, 우리 아들에겐 핸드폰을 사주지 않았다. 갑자기 뛰어가는 아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딸만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녀석이 이미 집에 와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빠가 너 선물 사주려고 학교 앞에 갔는데, 왜 갑자기 친구들하고 뛰어갔어???”라고 묻자.
[아? 아빠 왔었어? 그냥 친구들 하고 달리기 시합한 건데??]
“그럼 왜 동생은 놔두고 혼자 그렇게 뛰어가면 어떡해?”
[뭐? 집 가는 길 다 아는데 왜 맨날 내가 데리고 다녀야 해?]

이쯤에서 대화를 관두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아들녀석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맥주를 한잔하자고 하더라. 아이들이 자는 밤에 가게 문을 열고 아내와 맥주를 마시는데 아내가 하는 말이..

[어제 우리를 봤는데, 오래된 차를 타고 와서 창피했대.. 그래서 못 본척하고 뛰어갔대… 친구들한테는 아빠 차가 좋은 차라고 하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이 떨리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뇌리를 스쳤던 내 어릴 적 모습과도 너무 닮아있는 모습에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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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남의 시선을 받고 자란다. 그 시선으로부터 더욱 좋게 비치기 위한 포장을 끊임없이 해왔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봉고차를 창피해하던 내 어릴 적 철없던 모습 또한 친구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내 아들 역시 친구들의 시선에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어릴 땐 봉고차 하나만으로 15년을 넘게 장사를 하시던 모습에 번듯한 승용차를 구입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었다.

내 아들녀석도 지금의 내가 원망스러울까? 그리고 주변 지인들도 내 차가 더 크고 좋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걸까?


나는 남의 시선이 두려웠다.
글 / 다키 포스트
사진 / wikimedia, pexel, 화탑마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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