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포터2입니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다 아는 트럭이죠. 세단처럼 정장을 입어본 적도 없고, SUV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족 여행을 다니지도 않아요. 늘 작업복을 입고 빨간 목장갑을 끼고 짐을 실어 나르기 바쁩니다.

아, 요즘은 택배, 푸드트럭 등 다양한 일거리가 있어서 투잡이나 쓰리잡을 뛰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투잡, 쓰리잡은 뛰어야 노후 마련한다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저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게 살다 보니, 여러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네요. 그래서 이렇게 짬을 내서 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는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좀 나눠보렵니다.

저는 현대차 울산 공장이 본가인 77년생 소형 트럭입니다. 직계 가족은 없어요. 뭐, 먼 친척들 따지면 승용차, 대형 화물차, 버스 등 많지만 소형 화물차 집안에서는 제가 유일하죠. 아니,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봉고3요? 그 녀석은 저랑 의형제입니다. 기아가 우리 현대 집안에 들어오면서 한솥밥 먹는 가족이 되기는 했어도, 한핏줄은 아니죠. 그래도 국내에 두 종류 밖에 없는 소형 트럭이기 때문에 라이벌이면서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었나 봅니다. 그때가…77년 2월 즈음인데, 제 이름을 정하기 위해 공모전을 열었었다고 합니다.

무려 3만 5천 통에 달하는 엽서와 편지가 왔고, 그중에 325표로 포터가 1위로 선정돼 제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포터(PORTER)는 영어로 짐꾼입니다. 즉, ‘현대자동차 짐꾼’이죠.

참고로, 외부에서는 포터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HD-1000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죠. 가격은 150만 원 정도였습니다.

형제로 그레이스의 초기 모습인 현대 미니버스가 있었습니다…만, 3년 만에 저와 함께 백수 신세가 됩니다. (이유는 이따가.)

그 시절, 자동차 면허증만 있어도 “기사님~”소리 들으며 먹고 살 만큼 자동차가 귀한 때였지만, 81년도 7월까지 5만 명이나 저를 선택하며 국민 트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높은 연비가 한몫했죠. 제가 리터 당 16km를 갈 수 있으며, 당시 기름값이 116원/L 이어서 부산까지 가는데 3,132원이면 가능했다는 점을 크게 어필했습니다.

특히 유가상승으로 연비 좋은 차량을 원하던 사람들에게 있어 저는 아주 매력적인 짐꾼이었죠.

국민 짐꾼으로 잘 나가던 81년 2월, 전두환 정권이 ‘2.28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행정 명령을 내리면서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갔습니다. 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우리 집은 승용차부터 소형 화물차, 대형 화물차, 버스까지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 형편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직자가 되면 삼시 세끼 챙겨 먹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했죠.

생각해보세요, 수만 명이 찾을 만큼 인기 많던 트럭이 갑자기 사라지면 엄청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죠.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79년 정부에 의해 국내 산업 전체에 내려진 산업 합리화 정책의 일부입니다.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비료공업, 해운 산업, 발전설비 제조업, 석탄산업, 조선산업까지 적용되었던 최악의 정책이죠.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산업 전체에 시행된 억지 구조조정입니다. 경제에 대해 일자무식인 사람들이 무얼 알겠습니까… 아버지는 뒷목 잡고 쓰러질 뻔하셨습니다.

이때 여러 회사들이 강제로 통폐합되었고, 생산 품목 일부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간략히 설명드리면, 자동차 산업에서 현대는 승용차만 만들게 했고, 기아는 5톤 미만 화물차만 만들게 하는 등 자유 경쟁 체제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예시사진

덕분에 우리 집은 86년도까지 화물차 개발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해 90년대까지 디젤 엔진 기술이 뒤떨어져 고생했죠.

그리고 라이벌 관계로 성장하던 기아도 승용차를 만들지 못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 큰일 없이 함께 경쟁했다면 기술력 측면에서 10년은 더 앞당겼을 겁니다.

결국 우리 집은 기둥뿌리가 뽑힐 만큼 적자 상태가 유지되면서, 하루하루 불어터진 라면을 먹거나 물로 배를 채우는 보릿고개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건 추억이 아니죠. 겪고 싶지 않았던 악몽일 뿐…

휴…오래전 이야기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하지만 그 당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항의 한 번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기계발을 하면서 미래를 도모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어렵게 돈을 모아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잘 나가던 미쓰비시 집안의 델리카 2세를 만나 이것저것 배우게 되었고, 86년 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정식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포터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죠. 이때는 포터 2세대로 분류됩니다. 강제로 세대 교체가 된 셈이죠

그리고 저와 함께 백수 신세였던 미니버스도 그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재취업해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탓인지 성숙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턱 선은 날카롭게 서있었고 짐을 많이 실어 나르기 충분한 덩치를 가지게 되었죠. 전체적으로 각진 모습이다 보니 ‘각포터’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옷차림은 오로지 화물차 다운 작업복이 전부였습니다. 앉기 위한 의자가 있고 핸들과 수동 기어가 있을 뿐, 저는 우리 집안의 소형 화물차 계보를 이어나갈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헝그리 정신으로 달려들었죠.

그래도 나름 공기역학 디자인에 신경 썼고, 운전석 캡 부분에 카치온(Cation : 양이온) 전착도장을 사용해 기본 품질을 올리는데 집중했습니다.

전착도장이란, 물건을 페인트(전착 도료)에 푹 담가서 전기를 흘려보내 깔끔하게 도장하는 방법입니다.

체력은 2.5L 80PS 수준의 심장에 5단 변속기를 적용해 나름 쓸만한 트럭이었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어쩌다 보일 만큼 많이 판매되었죠.

이후 적재함이나 대시보드 디자인, 각진 외관 등을 조금씩 바꾸며 뉴 포터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저도 사정이 나아지다 보니, 맞바람을 덜 받게 외모를 좀 더 다듬고, 원형 헤드램프로 멋을 부려보기도 했습니다. 늘 작업복만 입는데, 이 정도 멋은 부려봐도 괜찮잖아요?

특히 체력을 키우기 위해 미쓰비시 아스트론 심장을 개조한 74PS 14.5kg.m D4BA 디젤 심장(T엔진)을 적용했습니다. 최대로 힘을 내려면 2,500rpm 정도의 심장박동 수가 필요했고 덕분에 중속 이상에서도 원활하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뭐, 쉽게 이야기하자면 짐을 가득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의미죠.

참고로, 일제 아스트론은 동급 독일제 벤츠 심장 다음으로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기 점검만 잘 해주면 큰 문제가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단, 연비가 좀 낮다는 흠이 있었죠.

96년도에는 뉴 포터라는 이름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성능 개선 외에도, 각진 외관보다 둥근 모습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바뀔 필요가 있었죠.

이전 세대의 뉴 포터와 이름이 같지만 성능과 모습은 달랐습니다. 특히 “트럭 위에 사람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1톤 트럭”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1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한때 “승용 트럭”이라는 낯간지러운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때도 미쓰비시에 방문해 델리카 3세와 만나 이것저것 참고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지금은 가족 묘지에서 쉬고 있는 그레이스와 비슷한 외모였습니다. 집에서는 이를 두고 승용차 스타일 리어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착했다고 표현했죠.

뭐, 다들 아시겠지만 화물차가 고급스러워 봤자 얼마나 바뀔까요…그냥 덜 촌스러워졌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때 제 몸값은 620만~647만 원 정도였습니다. 이전 세대 뉴 포터보다 20만 원 정도 오른 수준이었죠.

체력은 2.6L D4BB T2 심장을 달아 83PS, 17 kg.m의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엔진과 변속기에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해 엔진 덮개, 벨트 타입 타이밍벨트, 사일런트 샤프트를 추가했습니다. 추가로 각종 흡차음재를 덕지덕지 발랐습니다.

덕분에 공회전 중 소음이 112데시벨에서 86데시벨로 크게 줄었고 진동도 예전보다 덜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승용차만큼 조용해진 것은 아닙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큰 소음이 이제는 참을 만한 수준으로 개선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밖에 110만 원을 추가하면 4단 자동변속기를, 30만 원을 추가하면 파워핸들, 52만 원을 추가하면 에어컨을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에어컨은 이때만 해도 옵션이었습니다.

99년에는 일부 디자인과 색상이 변경된 작업복을 입었고, 한때 LPG를 마시며 일할 수 있는 심장이 탑재된 버전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삼성에서 야무진이라는 친구를 제 경쟁상대로 내보냈는데, 1.5톤 밖에(?) 못 버텨서 허리 디스크가 생기는 바람에 요양병원에 갔다가 지금은…

그리고 저와 함께 해오던 그레이스는 안전 기준과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라는 독촉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로 제사 때 사진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2000년에는 동생 리베로가 등장해 제가 잠깐 긴장하기는 했지만 적재량, 연비, 가격 측면에서 제가 앞서는 바람에 리베로를 쉽게 이겼습니다.

리베로는 나름 제 상위 차량으로 등장했는데 결과가 이렇다 보니 충격이 컸나 봅니다. 몇 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2007년 그레이스 사진 옆에 나란히 놓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봉고는 당시 봉고프런티어라는 이름으로 저와 경쟁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기아가 우리 집과 합쳐지며 한 가족이 되는 바람에 가족이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모습인 포터2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오래됐으니 풀 모델 체인지 하는 것도 있지만, 유로 배출가스 규제와 안전 등 여러 기준이 강화된 것을 맞추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1톤 외에 1.25톤 모델이 있었는데 1톤만 남기고 없애버렸습니다. 대신 봉고3가 1.2톤 모델을 유지하고 있죠.

심장은 포터의 영원한 심장 A모델로 바뀌었습니다. 체력은 123PS 25kg.m로 예전보다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졌습니다. 2007년에는 126PS로 강해졌으며 2012년에는 133PS로 향상되면서 6단 수동 및 5단 자동 변속기가 적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유로6가 적용된 심장으로, 133PS 26.5kg.m의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다소 낮아 보이는 출력이지만 1,250rpm이라는 낮은 심장 박동 수에서 3,500rpm까지 폭넓게 힘을 쥐어짜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일하는데 최적화된 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짐을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는 확 튀어나갈 정도로 잘 나가다 보니, ‘포터르기니’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슈퍼카처럼 튀어나가지는 않으니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그동안 외모와 체력만 키운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첨단 안전기능도 하나하나 추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ABS와 차세 제어기능, 에어백, TPMS가 적용되었고, 내비게이션과 동승석 에어백도 옵션으로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계기판에 트립 컴퓨터가 추가되었습니다.

외관은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미세하게 달라지기는 했지만 굳이 설명할 만큼은 아니네요.

가격은 예전에 비해 높아져 일반캡 기본 트림 기준 1,52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아니, 바뀐 게 크게 없어 보이는데 가격만 올라가나?”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 할 말은 있어요.

1,500만 원 가격대에 5m가 넘는 덩치를 만들고 유로 6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한 2.5L 디젤 심장을 사용해야 하며, 높은 내구성까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ABS, EBD, BAS, TCS, HAC 등 온갖 첨단 장치가 들어갔죠.

휴…이거 맞추느라 진땀 뺐습니다. 때문에 완전 기계식이던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은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아, 그리고 적재함 부식이 한때 큰 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죠. 그게 2011년 이전에 유독 많았는데, 2012년부터는 아연 도금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아연 도금이란, 아연을 입혀 철 대신 산화(부식) 되면서 철이 녹슬지 않게 하는 도금 방식입니다.

예전부터 부식에 대해 말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피부 관리도 경쟁력인데, 그걸 무시했으니 할 말이 없네요.

그리고…여러분, 제가 1톤 트럭인 거 아시죠? 그런데 2톤은 기본이고, 심지어 3톤, 4톤까지 실어 나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 허리 끊어지고 무릎 나갑니다… 제발 과적하지 말아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물론, 여러분들도 힘들게 일하시는 거 압니다. 그래서 저도 묵묵히 이해하고 잘 따르고 있죠. 하지만 제가 달리다 허리 디스크나 무릎 부상이 생기면 대형사고 직행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지만, 전 무적이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저는 돈을 내고 수리를 하면 그만이지만, 여러분은 수리 대신 치료를 해야 합니다. 이 차이점을 이해하셨다면, 부디 올바른 적재 부탁드립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제가 인기가 높을수록 경제가 어렵다는 이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불경기로 인해 퇴직자, 구직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절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죠.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런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저를 불경기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리다니…너무한 것 아닌가요? 묵묵히 일만 했는데 뜬금없이 이런 타이틀이 붙으니 기분이 좋지 않네요.

위의 이론과 다르게 자영업자의 수와 비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홀로 자영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는 높은 임대료 때문에 트럭 장사를 시작하시는 분들 외에도 푸드트럭 관련 법안이 개정되면서 1인 창업이 늘어난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 판매량이 늘어나는 이유로, 해마다 급증하는 택배 수요가 있습니다. 택배 시장은 벌써 5조 원이 넘을 만큼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절 택배 운송용으로 운용하려는 사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죠.

그밖에 농촌에서 저는 누렁소 2호로 여길 만큼 필수입니다. 온갖 농산물을 싣고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하거든요. 간혹 배추나 무를 2~3톤 실어 나르는 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과적은 위험합니다!)

특히 차량 노후화로 새롭게 바뀐 절 찾는 경우도 상당수 됩니다. 이처럼 단순히 불경기의 지표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죠.

차라리 소주 판매량을 불경기의 지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자, 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할 이야기가 많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어머니, 아버지들의 든든한 짐꾼이 되어왔습니다. 저는 항상 도로 위를 달리며 생각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성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좀 더 힘내서 그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라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손에 든 봉지에 과자가 아닌 치킨이 가득한 행복을 만들어 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토끼같은 아이들이 여러분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얼마나 흐뭇할까요?

전 언제나 여러분들을 위해 토크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대표 짐꾼으로서 열심히 일할 테니, 이것만큼은 기억해주세요.

우렁찬 디젤엔진 소리와 올라가는 RPM, 여러분들을 응원하는 소리라는 것을!


40대 중년 국민 짐꾼 포터2 인사드립니다
글 / 다키 포스트
사진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동아일보), e영상역사관, hyundai, younghyundai, 딜바다닷컴, wikiwand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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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관련 문의 : carder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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