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단지 또는 건설현장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대형 트럭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형 트럭 브랜드를 살펴보면 국산 브랜드로 대우, 현대 등이 있으며 수입차 브랜드로 벤츠, 만, 볼보, 스카니아 등이 존재한다.
대부분 승용 모델을 함께 만들어 익숙한 브랜드지만, 스카니아는 일반인들에게 있어 생소한 느낌이 앞선다. 단순히 ‘스카니아’ 브랜드 이름만 보면, 유럽 어딘가에 자리 잡은 기업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찾아보기 전까지는 정확히 어디에 있고 주로 무얼 만드는 회사인지 궁금증만 더해질 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스카니아는 127년 역사를 가진 제조사라는 점을 참고삼아 기억해두자. 100년 넘은 세월 속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으니 말이다.
스카니아는 1911년 철도 차량 및 트럭 제조사 바비스(Vabis)와 자전거 및 자동차 제조사 마스킨AB스카니아(Maskin AB Scania)의 합병으로 설립된 자동차 제조사 ‘스카니아 바비스(Scania Vabis)’부터 역사가 시작됐다.
보통 1911년을 스카니아 설립 원년으로 생각하지만, 바비스의 설립연도 1891년을 스카니아 브랜드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양사 합병 이후 엔진과 일반 차량 생산은 바비스 본사가 있는 스톡홀름 주 근처 쇠데르텔리에(Södertälje)에서 생산되었으며 트럭과 같은 상용차는 마스킨AB스카니아가 위치한 스코네 주의 말뫼(Malmö)에서 제조됐다.
스카니아라는 명칭은 스웨덴 최남단에 위치한 스코네(Skåne)라는 지명을 라틴어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스코네 지역 문장은 상상 속 동물 그리핀으로, 오늘날 스카니아 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스카니아를 인수한 사람이 귀족이라는 점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에서 스카니아를 인수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150여 년 동안 스웨덴의 산업과 금융을 지배해온 유럽 최고 재벌 가문이다. 1990년대에는 스웨덴 국민 총생산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가문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발렌베리 가문은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들을 구출하는데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사업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 모범기업으로 유명하다.
발렌베리 가문은 자원 및 인구 빈국 스웨덴에서 민간 상업 은행 ‘엔스킬다 은행(Enskilda Bank)’을 설립해 국내외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아 19세기 말 스웨덴 산업화 기적을 일군 유서 깊은 집안이다.
이후 ‘스웨덴 제2 군주’ ‘북유럽의 메디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철도, 철강, 목재 회사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채권이 불어나 잠시 파산 위기를 맞았지만, 경영진과 국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후 20세기 초반 유럽 은행 대규모 파산이 진행될 때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위기를 가볍게 벗어나게 됐다.
이 시기 건전한 재정 능력을 바탕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 및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발렌베리 가문 산하로 들어간 대표적인 기업으로 철강회사 호포스(SKF), 발전설비 기업 아세아(ABB), 대형 상용차 제조사 스카니아 바비스(스카니아)가 있다. 이후 IT 업체 에릭슨을 인수하기도 했다.
합병 이후 스카니아 바비스는 트럭과 함께 고급형 승용 모델을 생산했고, 1913년 말 덴마크에 자회사 ‘Dansk A/S 스카니아 바비스’를 설립했다. 1914년 4인승 Phaeton 승용차가 생산되었고, 1915년 트럭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밖에 1917년에는 노르웨이 자회사 ‘Norsk Automobilfabrik A / S 스카니아 바비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북유럽, 러시아 및 발트해 국가들에 군용 트럭, 버스와 같은 대형 상용차를 판매했다. 당시 엄청난 물량을 소화하면서 막대한 이윤이 발생했고, 1916년 생산시설을 모두 상용차 모델 전용으로 바꾸고, 1919년부터 상용차 모델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종전 후 전쟁에 사용되었던 군용차량들이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차량 수요가 급감했고, 1921년 파산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발렌베리 가문이 스카니아 바비스를 인수하면서 역사를 이어가게 된다. 인수 후 1925년 스카니아 바비스의 승용 모델 생산 중단 결정을 내렸고, 1927년에는 말뫼 공장을 폐쇄 시켰다.
대신, 대형 상용 차량 제조에 집중하면서 1932년 독일 마지루스(Magirus)사와 협력연구로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등 상용차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1939년에는 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한 일체형 디젤 엔진이자 스카니아 모듈러 시스템의 기반이 된 로얄(Royal)을 출시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스카니아는 다시 한 번 군용 차량을 생산한다. 이때 스카니아는 Stridsvagn m/41 경전차 등을 면허 생산해 스웨덴 군에 납품했다.
전후 1948년 스카니아 바비스는 윌리스 지프와 폭스바겐 비틀 총판을 맡으면서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사업이 잘 되어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고 한다.
넉넉해진 재정상태를 바탕으로 1949년 직분사 디젤 엔진을 출시하게 되는데, 내구성이 뛰어나 “40만 km 엔진”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1953년에는 L51 드라반트(Drabant) 트럭이 출시되었다.
6.2L I4 직분사 디젤엔진을 얹어 100마력에 6톤 적재 능력을 갖춘 2축 트럭으로, 1959년 단종될 때까지 9천 대가량 판매되며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L71 리젠트 모델을 출시했다. 150마력 9.3L I6 직분사 디젤엔진을 탑재해 10톤가량을 적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대형 상용차 부문 최강자 볼보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스카니아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어 1950년대 말 스웨덴 내 점유율 50%를 달성했고, 대형 상용차의 경우 70% 점유율을 보이며 국민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비슷한 시기 수출 물량에도 변화가 있었다. 전체 물량의 10%만이 수출 물량이었던 1950년대 이전과 달리 1950년대 이후 전체 생산량의 50%가 수출 물량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1960년대에는 브라질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당시 브라질 내 대형 트럭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으며 도심지 버스 이용 급증, 산간지역 노선 부족 등 스카니아에게 있어 기회의 땅이었다.
이후 네덜란드, 보츠와나, 탄자니아, 미국, 한국 등지에 진출하면서 그 대형 상용차 계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다.
1968년, 사브와 합병되면서 사브-스카니아 AB로 사명이 변경되면서 엠블럼이 바뀌었고, 트럭 출고 시 스카니아 바비스 대신 스카니아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명 축약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스카니아 트럭 모델명이 배기량을 중심으로 변경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L35 모델은 5.0L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L50으로 변경되었으며 L76모델은 11.0L 엔진을 사용해 L110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0’은 시리즈를 의미한다.
196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트럭 엔진이 개발되었다. 14.0L V8엔진은 세계 최초 직분사 V8 디젤엔진으로, 350마력 127kg.m 토크를 자랑했으며 L140모델을 기반으로 임업용, 건설용, 견인용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준으로 ‘0 시리즈’가 출시되었으며 1, 2, 3 ,4 시리즈 등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다.
1970년대 스카니아는 황금기로 접어들면서 생산량 2배, 수출 3배 증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고,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에도 생산공장이 들어섰다.
1990년대부터는 잦은 인수가 이어지면서 모기업이 수시로 바뀌게 된다. 1995년 스카니아 AB로 사브로부터 독립했고, 1999년 스웨덴 볼보 트럭이 스카니아를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변경되었다.
2006년에는 독일 대형 상용차 제조사 MAN이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MAN의 모기업인 폭스바겐이 2008년 지분 인수를 통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스카니아의 모기업이 되었다.
스카니아는 5개국 11개 공장을 운영하며 4만 5천 명의 직원을 두고 100여 개국에 영업 및 서비스 대리점을 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특히 부품 수 간소화를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단일 모듈 시스템을 개발해 생산 효율과 비용 절감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오랜 역사와 우수한 성능, 높은 신뢰성을 통해 대형 상용차 제조사 중 가장 유명한 메이커로 성장했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모델은 P(중단거리), G(중장거리), R(장거리)로 분류해 판매되고 있다. 그 밖에 저상버스, 굴절버스 등이 출시 중이다. 그 밖에 친환경 트렌드에 맞춰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1969년 등장한 14.0L V8엔진은 세계 최초 직분사 V8 디젤엔진으로, 350마력 127kg.m 토크를 갖추고 있다. 지금 보면 배기량 대비 낮은 성능이지만 당시만 해도 가장 좋은 디젤 엔진이었다.
그리고 해당 엔진을 탑재한 모델을 시작으로 ‘스카니아 0시리즈’가 등장했다. 정식 모델명은 Scania L140으로 14는 14.0L를, 0은 0시리즈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스카니아는 V8 디젤엔진을 약 50년 동안 고수해 오고 있다. 최근 유로 6 규제 등 환경 문제로 수많은 제조사들이 I6(직렬 6기통)으로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스카니아는 V8 디젤엔진 외길 인생을 걷고 있어 놀라울 정도다.
요즘은 16.4L V8 730마력에 357kg.m 토크 성능을 갖춘 대형 엔진(R 시리즈 전용)이 등장하면서 높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유로 6 기준을 통과해 기술력과 성능 모두를 인정받고 있다.
스카니아와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고,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었다. 스카니아는 첫 등장 이후 현재까지 국내 대형 트럭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에는 누적 판매대수 1만 대 고지를 정복했다.
1995년 스웨덴 스카니아의 한국지사에서 한국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스카니아코리아(주)로 사명 변경했다. 이를 통해 국내 상용차 시장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스카니아가 오늘날까지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는데 있어 품질 외에도 ‘의리’가 작용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수입 브랜드들 대부분이 철수 또는 사업 축소를 고려하고 있을 때 끝까지 남아 오히려 투자 확대를 이어나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이유로 대형 상용차 업계에서는 가장 친숙한 브랜드 중 하나로 인식되어있다.
유럽 어딘가에 위치한 화물차 브랜드로 알고 있었던 스카니아, 알고 보면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앞으로도 스카니아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영화 매드맥스에서 워보이들이 “V8!! V8!! V8!!”을 외치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 기억에 남아있다. 스카니아 또한 “V8 디젤!!”을 외치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점을 기억해 둔다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127년 대형 상용차 외길 인생, 귀족 기업 스카니아
글 / 다키 편집팀
사진 / 스카니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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