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민 5호 SM5입니다. 요즘 제가 어떤 차량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 넘치는 시간을 쪼개 제 인생사를 들려드리려 왔습니다. 네? 왜 시간이 넘치냐고요? 요새 일거리가 별로 없거든요…
전 여러분들이 어떤 이유로 절 만나려 하는지 잘 알아요.
제가 처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던 1세대 시절을 알고 싶으신 거 맞죠? 거 봐요,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눈빛은 내심 기대하고 있네요!
저도 그때 이야길 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고, 아무도 절 비난하지 않았던 시기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늘 즐겁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요새 생과 사의 기로에 머물고 있어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길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와요.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어? 이렇게 잘 나갔어!”라고 말하는데,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오는 그런…. 묘한 기분이죠.
아무튼 절 보기 위해 오래 기다리셨으니,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전 삼성 집안의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사는 곳은 부산시 강서구에 위치한 르노삼성 부산공장입니다. 요즘 우리 가족이 이곳저곳으로 불려나간 누적 횟수(누적 생산)가 300만 회나 된다고 축제 분위기네요.
옆 동네 현대나 기아가 보기에 소박한 숫자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 가족이 달려들어 달성한 수치이기 때문에 나름 뿌듯하답니다.
우리 집은 다른 집안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겠지만, 의외로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곳으로 소문이 나있죠. 하나의 라인에서 최대 8명의 서로 다른 가족들이 동시에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혼류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2016년 전 세계 자동차 공장을 대상으로 하는 생산성 지표인 ‘하버리포트’ 평가에서 148곳 중 8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집안 명성을 별로지만, 공장만큼은 수준이 높다고 자신합니다.
이처럼 화목한 집안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으로, SM3, SM6, SM7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유학파입니다. SM6는 프랑스 르노에서 공부했으며, 저와 SM3, SM7은 일본 닛산에서 공부를 마치고 왔죠.
순서를 정하면 제가 첫째, SM3가 둘째, SM7이 셋째, SM6가 막내입니다. 모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가족이었으면 좋겠지만, SM6만큼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네요. 몇 년 전 등장하자마자 제 밥그릇을 뺏어갔거든요. 이 이야기는 마지막 즈음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QM3와 QM6는 사촌이며, 트위지나 클리오는 5촌뻘 되는 아저씨입니다. 아, QM5를 말씀 안 드렸네요.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왔습니다. 부지런하게 뛰어다니긴 했는데, 인기가 없어 스트레스로 요단강을 건넜죠.
역시 태어날 때 순서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것 같아요. 그때 안타깝다는 생각보다 남일이 아닌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새 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QM5 옆자리에 나란히 누울 가능성이 있거든요.
자, 이 정도면 가족 소개는 전부 한 것 같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제 소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회로 나가기 위해 95년부터 98년 2월까지 4천억 원을 교육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교육기간 중 일부는 일본 닛산으로 건너가 좋은 자동차가 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때 참고했던 녀석이 맥시마(세피로)라는 녀석인데, 나름 평이 좋아서 귀국할 때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외모나 체력 등을 바꾸었습니다. 이른바 한국형 맥시마였죠.
여러 준비를 마치고 주변을 살펴보니,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98년도는 IMF 외환위기로 자동차 시장이 흔들렸던 시절입니다. 때문에 정식으로 일하기 전부터 다른 집에서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우리 밥그릇을 뺏으려고 해?”라고 말이죠.
제가 사회생활을 하기 직전, 현대에서 뉴 아반떼, EF쏘나타, 기아에서 크레도스V6, 쌍용에서 체어맨2300cc와 2800cc 를 내놓으면서 물 먹이려는 시도가 이어졌죠. 이것 참… IMF만 아니었다면 다른 곳에서 이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결국 신고식을 거하게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8년 2월 호텔신라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기가 어려운 만큼 “탈수록 가치를 느끼는 자동차.”라는 슬로건과 함께 안정성, 주행성능, 고급스러움을 두루 갖춘 만능 프리미엄 세단이라 소개했습니다.
프리미엄에 걸맞게 전자제어로 이루어지는 서스펜션, 핸들, 내비게이션 등 첨단 장비를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덜 피곤하도록 에르고노믹(Ergonomic) 시트도 적용했죠. 에르고노믹 하니까 너무 어렵죠? 쉽게 말해 인체공학이 들어간 시트가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SM520 / SM520SE / SM520V / SM525V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더 많은 인기를 위해 SM518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었죠
집에서는 “차 한 대만 고장 나더라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깜짝 놀라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라며 사회에 나가서도 절대 아프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엄청 튼튼합니다. 허세가 아니라, 정말 튼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 몸을 구성하는 여러 부품들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재질로 되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영구 타이밍 체인, 백금 점화 플러그, 반영구 스테인리스 머플러가 있죠.
특히 차체에 아연도금 강판을 수입차와 맞먹는 수준으로 사용했고 신가교 도장을 적용해 시간이 지나도 녹이 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아연도금과 신가교 도장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면, 아연도금은 차량 강판에 아연을 씌워 대신 부식되도록 해 강판이 녹슬지 않도록 하는 희생 도금의 일종이고, 신가교 도장은 오염물질이 차량에 접촉되어도 손상되지 않도록 하고 발수성과 광택을 유지해주는 도장입니다.
이렇게 몸은 튼튼하게 하고 피부관리까지 받으니, 한결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참고한 맥시마보다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탓에, 해외에선 “그렇게 좋은 걸 내수로 썩힐 셈이야? 빨리 수출하지그래?”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서, 한때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32,000km 대륙 종주 프로그램인 ‘동-서 문화의 길 탐사’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 다롄을 시작으로 – 인도 – UAE – 카타르 – 레바논 – 요르단 – 그리스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별 탈 없이 성공해 주변에서 놀라운 시선으로 절 바라봤습니다.
당시 오프로드 차량으로 종주했다는 이야기는 종종 있었지만 세단 타입인 저 같은 차량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드물었죠. 게다가 자동차 시장 변두리였던 그 시절, 제가 세운 기록은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때 제 체력은 SM525V 기준, 닛산 가문의 VQ25 심장을 사용해 173마력에 22.5kg.m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최고속력 207km/h 연비 10.3km/L를 달성했죠. 정숙성이나 출력은 당시 기준으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남들보다 밥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어 기름값 부담이 다소 있었습니다.
특히 제 심장은 워즈오토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7년 연속 선정된 VQ30DE과 같은 계열로 유명합니다. 1994년부터 적용된 VQ 계열로, 신뢰성을 인정받아 꾸준히 개량된 심장이었죠.
이처럼 튼튼하고 우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보니, 제 몸값은 SM520은 1,440만 원, SM520SE는 1,551만 원, SM520V는 2,072만 원, SM525V는 2,885만 원이었습니다.
그 밖에 SM530L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우리 집안 어른분들과 함께할 때만 특별히 차려입은 것이라 1억이 넘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X6나 S클래스 가격보다 높은 가격이었죠. 소량 생산이라 비싼 것도 있었지만, 내부 인테리어와 소재들이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사전계약은 3월 5일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한 달 동안 12,386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당시 경쟁하던 친구들이 월평균 11,000명 수준의 인기가 있었으니, 그들보다 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덕분에 등장 초기부터 중형차 시장 1위를 달성하고 월마다 인기 그래프가 100% 넘게 상승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저를 이길 경쟁상대는 아무도 없었죠.
사람들은 “너 처음에 나올 때만 해도, 기대 반 의심 반이었는데, 지금은 너 아니면 안 되겠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제 외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고, 튼튼하기까지 하니, 절 좋아할 수밖에요.
요즘은 “대를 이어서 탈 수 있는 자동차” “수리비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사고만 안 나면 수리할 필요가 없는 차.”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네? 농담 아니냐고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길 듣는 차량들이 없으니 판타지에서나 접할 것 같은 이야기 같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해외 나가면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드물 뿐.
이처럼 제가 잘 나가고 있는 상황에 뜬금없이 집이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 무슨 일인가 하고 살펴보니, 자동차를 만든다고 이곳저곳에서 빌린 액수가 2조 5천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열심히 벌어서 집안 살림에 보태도 빚 갚는데 죄다 쓰는 바람에 남는 게 없었죠. 게다가 IMF 여파로 신차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 밖에 제게 들어간 여러 부품에 대해 고 품질을 고집하다 보니 부품값도 상당히 비싸 수익 측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점도 한몫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저 집 망하면 널 유지 보수해줄 부품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불안한데?”라며 의심을 품기도 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99년도에는 월평균 200~300명만 저를 찾았고, 단종에 대한 불안을 늘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 붙기 직전이었습니다. 원래 친척 집인 삼성생명으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아 회생을 시도하려 했지만, 주식상장이 늦어져 시기를 놓치게 되었죠.
결국 정부는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는지, 우리 집(삼성자동차)와 대우 전자 부문 사이에 빅딜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그동안 자금난에 시달렸기 때문에, 삼성자동차, 삼성상용차, 자동차 부품사업 등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청산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우 쪽에서 인수거부 의사를 밝히며 협상이 늘어지다가, 7개월 만에 백지화되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르노가 “우리 밑으로 들어와 지원해줄게.”라며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거부하면 공중분해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우리 집은 르노 패밀리가 되면서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실사 가격 12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인데 상황이 좋지 않아 절반에도 못 미친 가격에 르노로 넘어갔다며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함께 해온 수 천명의 동료분들을 생각하면 무작정 셔터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뭐, 국산 브랜드로 도약하기 전에 외국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종 될 줄 알았던 제가 다시 활발히 활동하자, 사람들은 저를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저도 마음을 다잡고자 2002년 외모를 조금 고친 상태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해 눈매와 뒷모습을 다듬고, 내부도 시대에 맞게 세련된 인테리어로 채워 넣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트렌드에 맞게 개선되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한차례 큰일을 겪은 후 자잘한 결함이 생겼다는 사람들의 불만도 다소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동 불량과 와이퍼 모터 결함이 있습니다.
전부 리콜 조치 되었지만, 사람들은 인수되기 전 저를 찾느라 중고차 시장을 뒤지기 바빴다고 합니다. 덕분에 중고차 시장에서 수입차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음..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긴 한데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라 씁쓸한 맛을 느꼈죠.
2005년에는 암울한 시기를 벗어나 새 출발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뉴SM5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절반 정도 이야기가 끝났네요.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제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시절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새 경쟁하는 친구들에게 밀리다 보니, 하루 벌이 삶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그 시절 추억을 안주 삼아 한잔하고 자는 날의 연속이네요. 아…옛날이여!
2003년 즈음 주변을 둘러보니 자동차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세련되고 여러 첨단 장비가 추가되기 시작했죠. 저도 더 이상 90년대 유행을 유지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외모를 시작으로 다양한 부분을 바꿀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닛산 티아나를 참고했습니다. 예전엔 해외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가는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친척 집에서 먹고 자며 잠깐 신세 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르노-닛산 가족들은 제가 방문하니, 여러 가지를 알려주며 교육비로만 2년간 1천억 원을 지원해줬습니다.
덕분에 2005년 1월 말 뉴SM5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웰빙라이프가 유행이었던 시기라,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운전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승차감은 경쟁하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 단단한 느낌이지만 대체적으로 부드러웠으며, 곡선 및 직선 구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모빌라이저 기능을 갖춘 스마트카드시스템을 적용했고 실내외 온도를 감지해 좌석마다 에어컨을 따로 조절하는 풀 오토 에어컨, 악취나 유해가스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AQS 기능, 충격 정도에 따라 압력을 조절해 터지는 스마트 듀얼 에어백 등을 적용해 안전함과 편안함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진동이 좀 있고, 뒷좌석이 좁다는 불평이 나왔습니다. 덤으로 리어램프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제가 참고했던 닛산 티아나와 같은 외형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슷하지만 내부를 구성하는 세부 디자인이 달랐죠.
특히 동생 SM7과 판박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뭐, 형제인데 닮으면 어때요…라고 말하면 만수무강할 만큼 욕을 먹었겠죠.
사실 SM7도 저처럼 닛산 티아나를 참고해 얼굴과 뒷부분만 살짝 늘려서 등장했기 때문에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저마저 모습이 비슷하니, “너희는 국적이 어디냐?”라는 비아냥이 이어졌습니다. 새롭게 나오려면 개성을 좀 갖추라는 의미였죠.
물론, 저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는 힘들었습니다. 본가에서는 “개발비 아끼면서 효율을 높이는 운영이 요즘 유행이라 가족 구성원 일부를 많이 참고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디자인 외에 뼈대도 닛산의 티아나 뼈대를 SM7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뼈대 자체는 르노-닛산 합작품으로, 충격 최소화를 위한 크럼플존과 운전자 보호를 위한 세이프티존을 갖춘 고에너지 흡수 차체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차량 표면 불소 도장 메이크업을 해서 녹이 잘 슬지 않아 1세대 명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불소 도장은 열과 오염에 강하고 광택까지 유지되는 고급 도장입니다. 특히 자외선에 쉽게 파괴되지 않아, 오랫동안 도장이 유지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건축 계열에서는 불소 도장의 수명을 20년 정도로 보고 있죠. 그래서 오랫동안 운전해도 부식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겁니다.
이런 도장 강점은 다른 곳 보다 우리 집이 잘해서 유명세를 치렀었죠.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길 “뉴 SM5는 어디 긁혀도 바로 강판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다른 도장이 또 있어서 녹슬질 않아.”와 같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원래 불소 도장은 차량용이 아닌 건물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걸 닛산에서 차량에 적용해 부식 문제를 해결했고 덤으로 광택까지 오래 유지되어서 늘 처음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닛산뿐만 아니라 집(삼성차)에서도 어떤 도장을 사용해야 더 좋을지 연구소 지붕 위에 올려놓고 새똥을 맞아도 괜찮은지 실험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체력은 SR20DE 심장을 사용해 140마력에 18.8kg.m 최대토크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대로 힘을 내기 위해 4,800수준의 심장박동수(rpm)가 필요해, 적당히 달리거나 천천히 달리는데(저속~중속) 최적화되어있었습니다.
SR20DE 심장은 SR 계열 심장이 2.0L 수준의 폐활량을 갖추고 있으며 DOHC 타입이고(D) 전자식 연료 분사 장치를 갖추고 있음(E) 을 의미합니다. 닛산 기준으로 소형~중형 가족들의 심장을 담당했으며 어떻게 단련하는가에 따라 고성능으로 변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온갖 정성을 쏟아부은 덕분에 동급 최강이었던 NF 쏘나타와 비슷한 인기를 누리며 한 줄기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좋다 보니,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천억 원을 들여 자기계발을 하는데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2007년 7월 2일, SM5 뉴 임프레션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변경 사항은 얼굴 및 몸매, 그리고 뒤태도 손을 좀 봤습니다. 특히 심장을 SR20DE에서 MR20DE 심장으로 교체해 더 가볍고 강력한 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MG 계열 심장은 르노-닛산에서 공동 개발한 심장으로, 정숙성이 뛰어나며 심장 효율을 끌어올리는데 특화되어있습니다. 다만 체력이 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네요. 물론, 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지만 성향에 따라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 방면에서 만족할만한 평가를 받았지만, 엔진이나 변속기 등을 고정시키고 엔진 진동을 줄여주는 장치인 엔진 마운트 수를 줄이는 바람에 드라이브 모드(D 단) 정차 중 진동이 올라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 정도는 줄여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독이 되었죠. 때문에 많은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튼튼함과 정숙성으로 먹고 살아온 제가 스스로 장점을 내려놓은 꼴이 되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경쟁상대였던 NF와 YF 쏘나타 보다 정숙성이 좋고 튼튼해서 먹고 살 만큼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2005년 풀 모델 체인지 이후, 몇 차례 트렌드에 맞춰 관리를 했지만 워낙 오래되다 보니 인기가 식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기상 다음 세대로 넘어갈 타이밍이라, 제 스스로 큰 변화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번엔 그동안 벌어놓은 돈과 본가에 지원 요청으로 얻은 지원금을 가지고 뼈를 깎는 수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초 다시 사회로 돌아오기 전까지 3년 동안 4천억 원을 쏟아부었습니다. 과거 르노삼성으로 바뀐 후 천억 원만 사용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자수성가 한 것이나 다름없었죠. 저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5년 만에 4배 뛰어올랐으니 말이죠.
이때는 다른 변화를 주고자 유럽형 패밀리 세단에 도전했습니다. 이를 위해 르노 라구나라는 녀석을 만나 여러 가지 노하우를 듣고 뼈대를 시작으로 얼굴, 심장 등 여러 부분을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비슷하게 따라 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초기부터 우리 집과 함께하는 연구원들이 참여해 전체 과정의 80%를 주도했습니다. 1세대를 시작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나름의 노하우도 있겠다, 도전장을 내민 것이죠.
시간이 흘러 자동차 시장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2010년 초 3세대 뉴 SM5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죠. 처음엔 사람들의 기대가 컸는지 사전계약 이후 8일 만에 9천 명이 다녀갈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좋았습니다. 정말 성공할 것만 같았거든요.
경쟁상대는 YF 쏘나타였습니다. 1세대 등장 이후 끈질기게 따라붙으려 했지만 몇 번 이겨보질 못했습니다. 당시 YF 쏘나타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반면, 저는 안정적으로 가고 싶어 절제 미를 추구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튀는 모습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가면 되겠다 싶었죠.
하지만 제 외모는 생각보다 혹평이 많았습니다. YF 쏘나타의 충격이 컸던 탓일까요? “밋밋한데?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야.” “턱(프론트 오버행)이 왜 이렇게 길어? 죠스바 같이 생겼어.”등 썩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죠스바라니…난생 처음 비교된 대상이 아이스크림이라니 실망감이 컸습니다. 한편 YF소나타는 때아닌 전성기를 맞이하며 파격적인 모습이 잘 먹혀들었습니다. 호불호가 강했다고 하지만 지름신 강림은 막지 못했나 봅니다.
전 외모에서 깎인 점수를 만회하고자 내부에 공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퍼퓸 디퓨저를 도입했고, 인텔리전트 스마트카드 키 시스템, 마사기 기능이 내장된 전동시트, 2열 독립형 풀 오토 에어컨,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타이어 공기압 경보 시스템 등 각종 첨단 안전기능과 편의사양들을 익혔습니다.
주변의 평은 좋았습니다. 내부가 고급스럽고 이제는 SM5만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정숙성까지 갖추었으니 말이죠.
체력은 2.0L M4RK 심장에 CVT 변속기를 적용해 141마력에 19.8kg.m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습니다. M4RK는 MR20DE로 부르기도 하는 심장으로, 앞서 설명드린 것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연비에 유리한 CVT 변속기를 사용하고도 만족스러운 연비가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SM5는 다 좋은 데 연비가 별로다.”라는 의견이 공식처럼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네, 차라리 쏘나타랑 함께하는 게 낫겠어.”와 같은 의견이 대부분이었죠 게다가 기아에서 K5라는 신기한 녀석이 나와서 잠시 쏘나타를 밀어내는 기적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결국 쏘나타와 K5에 밀려 중형시장 3위로 떨어져 찬밥 신세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10년 말 2.5L V형 6기통 2ZV 심장을 추가해 178마력에 23.8kg, m 최대 토크를 낼 수 있도록 체력을 강화했습니다. 2ZV 심장은 VQ25DE로 부르기도 하는데, 처음에 소개한 VQ20DE의 상위 버전입니다.
1994년부터 사용된 심장이지만 꾸준히 개량해 체력을 키워온 케이스입니다. 연비는 10.1km/L로 낮은 편이었지만 만족스러운 출력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별 볼일 없었는지 다시 인기가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나름 노력했는데…역시 자동차 시장은 정글보다 무서운 곳입니다.
이후 정상궤도에 오르기 위해 2012년 말 뉴 SM5 플래티넘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 했습니다. 이전에 지적받았던 외모 일부와 다양한 체력을 위해 1.6L TCE 심장을 추가했고 나중엔 1.5L K9K 디젤 심장을 추가했습니다.
특히 K9K 심장은 폐활량이 1,461cc였기 때문에 소형차로 분류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16.5km/L라는 높은 연비 덕분에 잠깐 인기를 얻기도 했죠. 다만, 110마력이라는 형편없는 체력 덕분에 “뼈를 주고 살을 취했다.”라는 평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인기는 계속 감소해, 2010년 8만 8천 명이 수준이었던 인기는 2015년 페이스리프트 당시 2만 5천 명대로 크게 줄었습니다.
2015년에는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 한 번 더 외모를 고치는데 도전했습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기 때문이죠. 이름도 SM5 노바로 고쳤습니다. 외모는 바다 건너 스페인에서 온 QM3와 비슷한 패밀리룩으로 바꿨고, 원통형 LPG탱크가 장착된 모습으로도 등장해 밀려났던 택시 시장을 잡는데 노력했습니다.
다른 곳은 택시 이미지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전 1세대부터 택시와 인연이 깊었기 때문에 끝가지 함께할 동반자로 보고 있었죠.
문제는…제가 이리저리 노력해도 지지부진하자, 2016년, 본가에서 SM6라는 녀석을 데뷔시켰습니다. 저와 같은 중형 세단인데, 상급 모델로 나와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인기를 쓸어갔습니다.
게다가 중형 세단의 강자 쏘나타와 K5를 앞지르는 깜짝 쇼를 펼쳤습니다. 덕분에 저는 오늘날 800명 정도 인기만 누려도 감지덕지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요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8년형 연식변경을 한 뒤 “10년 전 가격 그대로!”를 외치며 가성비 전략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음…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아반떼 몸값으로 낮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죠. 덕분에 싼 맛에 절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착잡하네요… 이따 이야기 끝내고 한잔하러 가야겠습니다…
98년도 그 시절 영광은 어디 가고 “싸다 싸! 골라골라!”를 외치고 있을까요… 얄미운 SM6 만 아니었다면 좀 더 사정이 좋았을 텐데.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나름 삼성家 장남인데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작년에 집에서 이야길 하길, “지금(2017)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 단종시킬 수 있다.”라고 했었죠. 2017년 월평균 600명 만큼의 인기가 있었으니, 300명 수준으로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숙청 타이밍인 셈이죠.
다행히 요즘 월평균 850명 수준에 머물고 있어 당분간은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겠네요.
프리미엄 SM5에서 서민 5호가 되었지만, 세대 구분 없이 아직도 저와 함께 인생을 즐기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버티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삼성 자동차 역사를 몸으로 겪은 백전 노장의 자세로 꿋꿋이 버텨나가겠습니다.
내년에도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옛날이여! 서민 5호 SM5 인사드립니다!
글 / 다키 포스트
사진 / 르노, 닛산, 르노삼성, 보배드림, wikimedia,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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