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90년대까지 현대차-기아차-대우차-쌍용차 등 수많은 회사들이 싸우던 춘추전국시대가 있었다. 대결은 총과 칼이 아닌 자동차 판매량과 품질로 승부했다. 덕분에 기괴하거나 시대를 앞서가거나 트렌드를 주도하는 등 실험적인 차량이 등장해 자동차 마니아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특히 콘셉트카로 끝났지만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스포츠카가 등장해 잠시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바로 경량 스포츠카 솔로 Ⅲ(Solo Ⅲ) 때문이다.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차량은 Ⅰ과 Ⅱ모델이 존재했으며 지휘봉은 우리나라의 한 사업가가, 개발은 영국 클래식카 제조사에서 이루어졌다.

다소 엉뚱한 조합이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스포츠카 제조에 도전하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솔로 시리즈는 경량 스포츠카로, 프로토타입 쏠로Ⅰ과 양산 모델인 쏠로Ⅱ, 콘셉트카 단계에 머물렀던 쏠로Ⅲ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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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은 곳은 영국 클래식카 제조사 팬더(Panther)사다. 원래 클래식 타입 모델을 주력으로 1970년대에 잘 나갔지만, 1980년대 모피로 유명한 진도 그룹 김영철 회장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스포츠카 개발로 급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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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회장은 1969년 진도 그룹 부회장 직위에 있을 당시, 괌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남다른 사업 수완을 자랑했다. 그는 1980년 팬더사 인수 후 영국에 새 공장을 세우고 국내생산 차체를 사용해 스포츠카 쏠로를 생산하는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나라 기업인 최초로 세계 시장에 스포츠카를 판매하는 위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훗날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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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개발된 쏠로Ⅰ은 출시 직전 생산 취소된 프로토타입 모델로, 팬더사를 인수한 김영철 회장의 꿈이 담긴 스포츠카였다. 그는 현대적인 스포츠카를 개발하기를 원했고, 다행히 영국은 자동차 기술에 있어 독일만큼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쏠로Ⅰ개발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은 영국의 엔지니어 렌 베일리(Len Bailey)였다. 개발 당시 60세로, 16살 영국 오스틴(Austin)자동차 회사에 입사해 열정을 불태우며 30년 이상 자동차를 연구한 백전노장이었다. 사실 그는 업계 은퇴 후 편안한 여생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김영철 회장의 스포츠카 개발 열정에 감동해 다시 한 번 역작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쏠로Ⅰ 개발을 위해 참고할 모델로 페라리 308GTB를 선택했다. 그리고 동급 고급 스포츠카를 만들기보다 절반 이하의 가격에 페라리 308GTB와 동일한 방식으로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페라리 308GTB는 미드십 2인승 스포츠카였기 때문에 쏠로Ⅰ 또한 동일한 구동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가격 절감을 위해 포드 양산차 엔진과 부품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책정된 차량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6천만 원 선으로, 기존 스포츠 카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전문가들은 쏠로Ⅰ을 ‘경량 스포츠카 ’로 분류하는데,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경쟁 모델이 없었기에 블루오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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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로Ⅰ은 130PS 18.3kg.m 출력을 낼 수 있는 1.6L 포드 CVH 터보 엔진을 미드십 후륜구동 형태로 얹었고, 경량화를 위해 차체에 유리섬유와 알루미늄 소재를 적용했다. 특히 섀시 자체는 400마력까지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상태로, 향후 고출력 엔진 탑재까지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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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페라리308GTS와 유사한 팝업헤드램프와 타르가 루프(Targa top)을 적용해 스포티한 외관을 자랑했다. 또한 스포츠카 다운 에어로 다이내믹 형상을 채택해 공기저항 계수를 0.3Cd까지 내리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84년 쏠로Ⅰ 프로토타입이 런던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었고 연간 목표치인 30대 판매를 웃도는 100대 계약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포드의 관심이 이어져 포드 양산 차로 편입시키는 방안이 의논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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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쏠로Ⅰ은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불운을 겪는다. 포드와의 협상이 내부 문제로 지지부진했고, 비슷한 시기 토요타에서 MR2를 내놓은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MR2는 기존 양산차량의 엔진 배열을 미드십으로 변경하고, 영국 로터스사와 협업을 통해 차량 경량화에 성공한 차량이었다. 특히 가격 측면에서도 쏠로Ⅰ에비해 저렴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경량 스포츠카 시장에서 밀릴 것을 예상한 김영철 회장은 쏠로Ⅰ개발 중지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하는 대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쏠로Ⅱ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원점으로 돌아간 스포츠카 개발은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김영철 회장은 어떻게든 유명 제조사 수준의 스포츠카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다시 시작된 개발은 초기 개념 단계부터 재검토되었다. 주요 항목은 포드와의 협상 당시 화두로 자주 오른 상품성 개선이 있었다. 이를 위해 보다 높은 성능의 엔진 탑재, 주행 안정성을 위한 상시 사륜구동 구동방식 채택, 2열 좌석이 있는 2+2구조 변경 등이 주요 변경 사항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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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쏠로Ⅰ은 MR2등 경량 스포츠카와 겹치지 않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로 선회하게 되었고 차량 명칭도 전작의 뒤를 잇는다는 명분하에 쏠로Ⅱ로 정식 결정되었다.

쏠로Ⅱ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다운포스를 늘리는데 특화되어있었다. 그리고 F1전용 섀시 제조기술을 보유한 마치 엔지니어링(March Engineering)과 협업을 통해 당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특수 섀시가 사용되었다.

이 때 제작된 쏠로Ⅱ 섀시 강성은 탄소섬유와 케블라 등을 혼합해 요즘 출시되는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게는 1,340kg으로 가벼운 편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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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은 포드 시에라 RS에 적용되었던 2.0L I4 DOHC엔진이 탑재되어, 207PS, 27.6kg.m의 출력을 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최고속력 232km/h에 제로백 6.8초를 기록했다.

오랜 시간 끝에 쏠로Ⅱ는 완성되었고,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과정만 거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쏠로Ⅱ를 판매하기에 글로벌 스포츠카 시장의 벽은 높았다. 다소 부족한 마감 처리와 출력은 포르쉐911, 로터스 에스프리 터보 등과 견주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특히 3년 정도 늦어진 개발 지연과 1억 원 이상 가격대로 상승한 점은 생산한 지 1년 만에 영국 생산공장 폐쇄 및 우리나라로 생산시설 이전이 진행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종 전까지 쏠로Ⅱ는 18대 판매되었으며 이후 쌍용차의 팬더사 인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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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사라진 줄 알았던 쏠로가 다시 등장했다 모델명은 쏠로Ⅲ로, 포드사의 엔진이 아닌 220PS, 31.6kg.m 출력을 낼 수 있는 3.2L I6 DOHC벤츠 엔진으로 교체되어 최고속력 254km/h, 제로백 5.7초를 기록했다. 대신 엔진 변경으로 차량 뒷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져 괴작이라는 혹평이 뒤따랐다.

또한 쌍용차는 팬더 영국 생산시설 이전 이후 칼리스타를 생산하면서 손해만 본 경험 때문에 쏠로Ⅲ를 양산차로 생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결국, 쏠로시리즈는 1995년을 기점으로 마지막 챕터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영국의 기술력과 한 사람의 의지가 만들어낸 스포츠카 쏠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스포츠카 시장에 문을 두드렸으나 그 벽은 한없이 높았다. 쏠로 시리즈가 유명 스포츠카들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자동차 기술력이 있다 할지라도 수 십 년 이상 스포츠카 역사를 개척한 유명 제조사들을 몇 년간의 연구로 따라잡기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영철 회장의 의지를 이어받아 쌍용차가 꿋꿋이 쏠로시리즈 개발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재정 문제로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불모지에 가까운 국내 스포츠카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한 사업가의 꿈이 담긴 미드십 스포츠카 Solo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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