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KTX, ITX 등 고속철도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고속버스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특히 명절날 및 휴가철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용변 문제다. 버스에는 화장실이 없어 지정된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잘 컨트롤하는 수밖에 없다. 행여나 방귀라도 뀌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눈총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고속버스 일부에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쭉한 개 한 마리가 그려진 버스 ‘그레이하운드’이야기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힌 버스 그레이하운드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앞서 언급한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버스 모델명이 아니라 회사명이다. 버스의 정식 명칭은 ‘GM PD-4501 시니크루저’이며 미국 자동차 브랜드 GMC에서 5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1954년부터 1962년까지 1,001대 생산한 2층 고속버스다.

생김새를 보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언젠가 본듯한 아메리칸 스타일 버스다.

지금 봐도 생각보다 멋있는 디자인인데, 출시 당시 고속버스 디자인의 새 시대를 맞이했다고 호평받을 정도로 유명한 버스다. 문화 관련 전문가들은 “1960년대를 상징하는 버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특별했던 외부 디자인에 알맞게 내부 인테리어 또한 파격적이었는데, 에어컨, 화장실, 오페라 글래스 등 기존 버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양들이 적용됐다. 특히 이 버스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뒤쪽 2층 좌석은 높은 위치에서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많았다.

엔진은 ‘9.3L 디트로이트 디젤 8V-71’ 엔진을 얹어 318마력 119.72kg.m 토크를 기록했다.

나름 잘 나가던 시니크루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기존 버스 정비와 호환되지 않았고 검증받지 않은 신기술들이 들어가 차체가 갈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까지 운영되다 40대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40대는 보강작업을 거친 뒤 우리나라로 넘어와 제2의 차생(車生)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 그레이하운드 본사는 1970년대 한국으로 시니크루저 40대를 들여오면서 ‘그레이하운드 코리아’라는 고속버스 업체가 설립한다. 이렇다 할 버스가 없던 당시 우리나라 사정에 그레이하운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방송을 통해 광고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외형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영문자 그대로 새겨진 채 들어왔으며 그레이하운드 버스라는 명칭보다 ‘개그린버스’라는 별칭으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개그린버스의 의미는 “개가 그려진 버스”다.

내부에서 주목할 부분으로 에어컨, 2층 좌석, 화장실이 있다. 에어컨이 경우 천장이 아닌 창문 틈으로 나왔으며 2층 좌석은 버스에 오른 뒤 다시 계단을 올라가 탑승하는 방식이었다.

화장실은 용변을 볼 때 소리가 나서 곤란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노후화된 중고버스인데다 후륜 쪽에 탑재된 엔진 소리가 큰 탓에 소리가 묻혔다 한다. 나름 자유롭게 볼일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단, 오물은 터미널에서 직원이 전용 용기를 세척 후 다시 장착하는 방식이었다고.

또한 2층 아래 화물칸이 소 한 마리를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항공기 스튜어디스와 비슷하게 버스 안내 양이 있었는데, 이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경쟁률이 상당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노선으로 서울-대구 / 서울-부산 / 서울-여주 등이 있다. 당시 서울-부산 편도 6시간이 소요됐다.

이렇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시니크루저는 1978년 그레이하운드 코리아가 중앙고속에 흡수합병되면서 1980년대 초까지 운용되었고 이후 모두 폐기 처분됐다.

버스 디자인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장한 그레이하운드 시니크루저, 미국에서 은퇴 후 우리나라로 넘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이보다 더 좋은 버스들이 즐비하지만 그래도 특별함과 관련해서는 시니크루저를 따라올 모델은 없을 것이다.

워낙 오래된 버스 다 보니 관련 정보 또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개그린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고향을 방문하는 등 여러 추억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 공유해보자.

화장실이 있던 추억의 2층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

글 / 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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