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 평범한 시승기를 진행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나, 고성능 차량의 잠재력을 확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씨다. 마른 노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량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G80 스포츠’를 굳이 비 오는 날에 몰아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달려보는 것은 긴장도 없고 감흥도 없으며, 결국 다른 시승기와 비슷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이다. 어디서 본 듯한 레퍼토리와 뻔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G80 스포츠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때아닌 가을장마를 만난 G80 스포츠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아스팔트 위를 마음껏 휘저었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찔한 발놀림을 선사했다. 실망스러웠던 첫 만남이 잊혀질 정도로 말이다.

역동성을 강조한 ‘스포츠 패키지’ 모델답게, G80 스포츠에는 스포티함을 끌어올리기 위한 디테일 몇 가지가 추가되었다. ‘BMW M 스포츠 패키지’와 같은 드레스업 사양이 추가된 셈이다.

일반 G80과 디자인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은 전면부다. 범퍼 라인은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고 하단에는 블랙 컬러로 마감된 립 스포일러가 덧대어졌으며, 헤드램프 역시 강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블랙 배젤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전 세대만큼의 과감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조금 소소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일반 모델과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특히 측면 실루엣은 일반 G80과 거의 동일하다. 스포츠 모델만의 디자인 요소는 20인치 알로이 휠과 레드 컬러로 마감된 브레이크 캘리버뿐이다. 색다른 맛을 원해서 차돌짬뽕을 시켰는데, 평범한 짬뽕에 콩알만한 고기 몇 조각만 추가된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뒷모습에서도 그다지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리플렉터 위치를 위쪽으로 옮기고 범퍼 양쪽에 에어벤트를 더한 것이 전부다. 스포츠 모델 하면 떠오르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뒤태’와는 거리가 멀다.

정리하자면, 신형 G80 스포츠에 ‘스포츠 모델만의 파격적인 디자인’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 패키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저 약간의 디테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살짝 더했을 뿐이다.

물론 과도한 장식이나 튀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운전자에겐 나름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을 기대하던 운전자에겐 꽤나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2%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어딘가 묘한 아쉬움이 남는 익스테리어와 달리, 인테리어는 한마디로 제네시스답다. G80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우수한 안락함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스포츠 패키지만의 요소들을 더해, 격조 높은 품격과 스포티한 매력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특히 매끈하게 마감된 스포츠 전용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함에 대한 욕구를 단번에 충족시켜준다. 아울러 일반 G80에 적용되는 4스포크 스티어링 휠보다 그립감이 뛰어나, 다이나믹한 핸들링을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테리어를 구성하고 있는 소재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 스웨이드와 나파가죽 그리고 알루미늄까지, 저렴한 촉감이 느껴질만한 소재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시각적 만족감은 물론, 촉각적 만족감까지 누릴 수 있다.

한편, G80 스포츠의 실내공간은 광활하기 그지없다. 일반 G80과 실내공간 구성을 동일하게 가져간 덕분이다. 당연히 뒷좌석 공간도 운동장을 방불케 한다.

게다가 G80 스포츠는 뒷좌석을 위한 각종 편의사양을 빠짐없이 탑재해, 쇼퍼 드리븐 용도로 활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아울러 시승 모델은 뒷좌석 전동 및 통풍·열선 시트를 갖추고 있어, 극상의 안락함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인테리어 하나만큼은 해외 브랜드를 압도하는 제네시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뒷좌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마련된 일부 콘텐츠는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지 못하고, 12.3인치 컬러 디스플레이 계기판은 일반 G80 계기판 그래픽과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색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G80 스포츠의 스티어링 휠과 센터패시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버튼에 푸른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누가 봐도 제네시스가 아닌 현대자동차의 톤 앤 매너다. 이로 인한 어색함은 아직까지 제네시스가 현대자동차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음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다.

시승차는 가솔린 3.5 터보 엔진을 탑재한 모델로, 380마력의 최고출력과 54.0kgf·m의 최대토크를 갖추었다. 아울러 제원상 도심 연비는 7.3km/L, 고속도로 연비는 10.3km/L, 복합연비는 8.4km/L로, 2톤에 가까운 체구를 고려하면 꽤나 준수한 수치이다.

한편 도심과 국도를 약 30km를 주행한 G80 스포츠의 실연비는 10.0km/L로, 제원상 복합 연비보다 조금 높게 측정되었다. 이후 서울~춘천 구간을 왕복하며 실연비를 지속적으로 측정한 결과, 12~13km/L에 달하는 연비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G80 스포츠를 시승하는 내내, 연비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G80에 적용된 각종 첨단 기술을 경험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특히 컴포트 모드에서 승차감은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주행 도중 70km/h 정도의 속도로 깊게 파인 물웅덩이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G80 스포츠는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심지어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는 손에도 아무런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능동형 노면 소음 저감 기술(ANC-R) 덕분인지, 정숙성 역시 훌륭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빗방울이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전부였다. 노면 소음이 큰 고성능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다는 것을 잠시 동안 망각할 정도였다.

다만, ADAS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쏟아지는 폭우 때문인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와 차로 유지 보조(LKA)가 주행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율주행기술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비가 증명해 준 셈이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신형 G80 스포츠의 콘셉트는 이전 세대와 조금 다르다. 이전 세대의 G80 스포츠가 별도로 기획된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이었다면, 신형 G80 스포츠는 G80에 스포티함을 입히는 ‘선택사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행성능 면에서는 오히려 신형 G80 스포츠가 이전 세대를 압도한다. 기술이 발전했고 그만큼 완성도가 높아졌으니,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능동형 후륜 조향(RWS)이 곁들여진 G80 스포츠의 스포츠 주행성능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답력 조절이 가능한 브레이크 시스템까지 더해져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그동안 시승해온 국산차 가운데 가히 최고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G80 스포츠의 한계를 알기 위해, 연속으로 이어지는 헤어핀 코스를 과감하게 공략했다. 하지만 G80 스포츠는 흔들리지 않았다.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뉴트럴 특성의 핸들링을 보여주었다. 마른 노면이 아닌, 폭우로 젖어있는 아스팔트에서 말이다.

게다가 스포츠 모드에서의 서스펜션과 핸들링 감각은 해외 스포츠 세단에 범접해 있었다. 과도한 출렁임과 반 박자 느린 반응을 보여주었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기존의 국산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주행 감각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공차중량이 2톤에 가까운 G80 스포츠의 탈출 속도가 G70보다 빠르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G70의 공차중량이 1,600kg 정도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경이로운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가능하다면 직접 비교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고쳐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고회전 영역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RPM 세팅이 대표적이다. 아직 충분히 힘이 남아도는 데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낮은 영역에서 변속이 이루어졌다. 컴포트 주행 시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스포츠 주행 시에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정리하자면, G80 스포츠는 능동형 후륜 조향을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주행감각을 갖추었다. 즉, 기존의 국산 스포츠 세단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쟁의 초점을 해외 브랜드에 맞춰야 할지도 모른다.

신형 G80 스포츠, 기대가 컸던 만큼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모델이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제네시스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능동형 후륜 조향이 선사한 편안함과 즐거움이 아쉬운 부분을 메울 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G80 스포츠에서 보여준 재미가 그저 맛보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한층 더 색다른 제네시스의 도전을 기대하는 바이다.

“드디어 벤츠,비엠 잡으러 가나?” G80 스포츠 비 오는 와인딩 코스 달려보니…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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