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
PMMA 플라스틱 소재, 화재 키운 주요 원인으로 꼽혀
방음터널에 관한 안전 관리 규제도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 29일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구간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친 사고였다.
방음터널을 지나던 5t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난 것인데, 트럭은 터널 시작 지점에서 약 280m를 달린 후 불이 나 정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플라스틱으로 된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으면서 급속히 확산했다.
불은 2시간여 만인 오후 4시 12분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총 길이 830m 방음터널 가운데 600m 구간을 태웠다. 또한 터널 안에 있던 차량 45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루가 지난 30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전날 최초 화재 차량인 5t 폐기물 집게 트럭 운전자 A씨(63)로부터 “운전 중 갑자기 에어가 터지는 ‘펑’ 하는 소리가 난 뒤 화재가 발생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차량 조수석 밑쪽(차량 하부)에서 불이 나서 차량을 하위 차로(3차로)에 정차하고 (차량에 있던)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불길이 잡히지 않아 119에 신고하고 대피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SNS 등지에 올라온 사고 초기 주변 차량으로부터 찍힌 영상을 보면 불길은 트럭의 적재함이 아닌 엔진과 탑승석 등 앞쪽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선 엔진 과열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글] 박재희 에디터
불은 플라스틱 소재의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은 뒤 다량의 연기와 함께 급속히 확산했다. 해당 방음터널은 아크릴 계열의 플라스틱 수지인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불연 소재가 아니어서 고온의 열이 장시간 가해질 경우 불에 타게 된다.
따라서 방음터널 안에서 발생한 불이 순식간에 확산된 것을 두고 방음터널에 사용된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이 꼽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방음터널은 철제 H빔으로 만들어진 구조체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나 PMMA를 덮어 만들어진다.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및 방재 대책 수립 연구’에 따르면 PMMA의 인화점은 280도로 PC의 인화점인 450도 보다 170도가 낮아 화재 위험성이 더 높았다. 또 다른 플라스틱 소재와 마찬가지로 화재 시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외에도 메탄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에서 불이 더 빨리 번지고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30일 오전 11시께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등 관계자 25명과 합동 현장 감식에 착수했다.
감식은 최초 불이 난 5t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의 발화 원인과 화재 확산 경위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뤄질 예정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방음터널을 공사한 시공사와 도로 관리 주체인 ㈜제이경인고속도로에 대해서도 도로 건설·유지 및 보수 등 과정 전반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이번 화재 사고에 대해 방음터널에 관한 안전 관리 규제에도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음터널은 4면이 밀폐된 터널 구조이지만 소방법상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옥내 소화전 등 소방 설비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터널 내 운전 중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보자. 먼저 운전자는 터널 밖으로 신속히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차량과 함께 이동하거나 차량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 최대한 갓길 쪽으로 정차한 뒤 엔진을 끄고 키를 꽂아둔 채 신속하게 하차해 자리를 피해야 한다.
불길이 작다면 즉시 차량 내 소화기 또는 인근 소화기, 소화전을 사용해 화재를 진압해야 한다. 하지만 화재가 커져 조기 진화가 어려울 경우 재빨리 연기 반대 방향으로 터널 내 유도 표시등을 따라 밖이나 피난연결통로를 통해 옆 터널로 대피해야 한다.
인세진 우송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에 의하면 국내에는 방음터널의 화재안전 관련 규정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번을 계기로 불연성 소재 적용과 방음터널 화재 시 진입로 차단 등 기준의 재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사고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관련 제도와 기준이 마련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