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급발진 관련 법안
꾸준히 발생하는 사고, 줄지 않는 이유는?
현재 조사 방식에서 한계점은 없나?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가운데, 최근 이와 관련된 법안이 연이어 발의됐다. 먼저 지난 18일,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원인을 의무적으로 조사하게 하고, 자동차 제작자가 사고에 관한 입증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자동차 제작자가 사고에 관한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차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함으로써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 원인을 규명함과 동시에 자동차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현행법체계로는 피해자만 억울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라며 “이번 법안을 통해 급발진 사고에서 피해자만 고통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11일에는 급발진 사고의 제조사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서 제조물 책임법이란 소비자의 증명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2017년 개정되었으나, 여전히 소비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현행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법원의 자료 제출명령 제도를 도입해 제조업자가 영업 비밀이라 하더라도 결함과 손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당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법원은 자료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결함과 손해의 입증 책임을 자동차 제조업자가 지도록 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지금까지 발생한 급발진 사고들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로 인해 제대로 규명이 안 된 만큼 조속한 입법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리고 강조했다.
[글] 배영대 에디터
자동차 급발진이란 차량이 정지 또는 매우 낮은 출발 속도에서 의도하지 않은 높은 출력이 굉음과 함께 나타나면서 운전자가 차량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국내의 경우 급발진과 관련해 매년 의심 사고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50건, 2016년 57건, 2017년 58건, 2018년 39건, 2019년 33건, 2020년 25건, 2021년 39건, 2022년 15건 등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급발진 사고로 인정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는 게 놀라울 정도인데 국회 입법조사처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7월 제조물 책임법 시행 이후 2019년 5월까지 1심 판결이 나온 급발진 의심 소송 28건 가운데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이 일부라도 인정된 사례는 지난 2002년 12월 쉬프트 록 장치 미설치를 설계상 결함으로 본 판결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에서 자동차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판결이 뒤집히면서, 국내에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가 ‘제로(0)’가 되었다.
현행법상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의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원고에 있다. 즉 의심 사고 피해자가 기계 결함을 입증해 이를 근거로 자동차 제조업체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동차 결함과 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적 정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증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소송까지 가더라도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피해자가 요구하는 자료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는 한 기업의 귀책사유나 의무 위반 사실, 손해 발생의 정도 손해와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조사 시 사고기록 장치(EDR) 내 자료를 참고한다. 여기서 EDR 이란, 차량 충돌 전후 상황을 기록해 사고 정황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작동 여부는 물론이고 엔진 상태와 속도 등의 정보가 0.5~1초 단위로 기록된다.
국내에는 이 EDR과 관련해 제조업체는 자동차에 EDR을 장착하면 소비자에게 장착 사실을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하고, 소비자가 사고기록 공개를 요구할 경우 이에 따라야 한다는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에 있다. 그러나 이 법은 EDR가 장착된 경우 기록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EDR 장착 의무화와 관련된 내용은 없어 부족한 점이 있다. 참고로 시행 시점과 관련해서는 공포는 2012년 되었으나, EDR 장착 기준 마련과 제작사의 적합 여부 시험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3년 뒤인 2015년이 되었다.
이 법에 따라 자동차 제작사는 EDR 장착 여부를 안내문으로 알려야 하며, 자동차 소유자나 운전자, 보험사 등 조사자 등이 EDR 기록정보 제공을 요구하면 요구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해당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자동차 제조사가 EDR을 장착하지 않으면 해당 사항이 없고, 공개하는 운행 정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소비자가 책임소재 규명에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밖에도 의심사례 입증 과정에서 운전자 실수와 인지 오류에 따른 요인을 제외하고 기계적 오류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하다 보니 과연 EDR 기록만으로 급발진을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선 EDR에 대한 대안으로 OBD(On-board Diagnostics)-Ⅱ단자의 활용도 언급하고 있다. OBD-Ⅱ 단자는 2009년 이후 생산된 대부분 차량에 장착되어 있는데, 가속페달 작동량과 엔진 회전수, 차량 속도 등 20여 가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급발진 원인 규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2009년 이후 모든 차량의 OBD-II(차량정보 수집장치) 기능을 의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발의된 법안이 공포가 되고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몇 가지 과정들이 남아 있는데, 큰 문제 없이 진행되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나 규명되지 않는 급발진 의심 사례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