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코로나19의 위세가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스포츠 이벤트가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가운데, WRC(세계 랠리 선수권) 또한 일정 조정에 나서고 있다. 맥시코 랠리는 조기 종료 되었고 4월로 예정되었던 아르헨티나 랠리는 연기를 거듭한 끝에 결국 취소되었다.
하지만 올해 안으로 경기 재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모터스포츠 팬들의 예상을 깨고, WRC는 7월 2일 홈페이지를 통해 9월 24일 에스토니아 랠리를 시작으로 시즌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가 재개되는 2020 WRC 개최지는 에스토니아, 터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등 총 5곳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일본은 2010년 마지막 WRC 개최 이후 10년만에 재개최에 성공해 아시아권 모터스포츠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굳이 먼 유럽으로 떠나지 않고도 가까운 일본에서 WRC를 직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왜 한국은 WRC를 개최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오늘은 한국에서 WRC를 개최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경제·문화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에디터가 분석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YES’다. 2016년 5월 강원발전연구원에서 조사한 <세계자동차경주대회 경제효과 분석 연구용역>에 따르면, WRC가 우리나라 강원도에서 개최될 경우, 관람객 예상 지출액은 1년에 38억 원, 지역 경제 파급효과는 연간 50억 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7년, 강원도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 중 하나를 ‘WRC 개최’로 선택했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를 WRC 참가팀과 관중의 숙박 시설로 활용하고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한 ‘인제스피디움’을 핵심 인프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인제스피디움이 WRC 개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제스피디움을 관리하고 있는 태영그룹은 2016년 관계자 회의를 통해 WRC 강원도 유치 타당성을 논의하고 사실상 유치 불가 방향으로 매듭지었다. WRC보다 인제스피디움의 경영정상화가 먼저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국내 모터스포츠 업계도 F1 코리아그랑프리의 사례를 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개최된 F1코리아 그랑프리는 1902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남기고 2014년에는 아예 대회 개최를 포기하며,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큰 비난과 비웃음을 들었다.
그러나 WRC 강원도 개최는 F1 코리안그랑프리와 아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F1과 완전히 다른 WRC의 특성과 강원도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서킷을 필요로 하는 F1과 달리, WRC는 눈, 얼음, 자갈, 모래, 진흙, 물 등의 장애물이 난무하는 비포장도로와 심하게 굽어진 산간도로를 달린다. 즉, 전 세계의 다양하고 어려운 지형을 무대로 하기 때문에 주로 일반 도로에서 경기를 진행한다.
대표적으로 올해 11월 WRC 개최를 앞두고 있는 일본의 아이치현과 기후현은 일본에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도시 ‘나고야시’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일본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산악지형이 발달해 있다. 또한 나고야는 WRC에 참가하고 있는 도요타의 본거지로, 가까운 거리 덕분에 유치 활동과 각종 행사가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치현과 기후현의 도로 사정과 기후는 강원도와 거의 동일하다. 강원도에는 미시령, 배후령, 진부령, 한계령 등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고갯길에 각지에 산재해 있으며, 특히 배후령은 배후령 터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유후도로를 자유롭게 통제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넘겨 짚기가 아니다. 1973년부터 매년 WRC가 개최되고 있는 핀란드의 ‘케스키수오미’ 주(州)는 강원도처럼 험준하고 거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빠른 속도감과 아찔한 점프를 느낄 수 있는 개최치로 유명하다. 덕분에 케스케수오미주는 매년 22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모터스포츠계의 메카로 떠올랐다.
지형이외에도, 케스키수오미주는 강원도와 닮은 점이 많다. 이 지역의 면적은 18,660㎢으로, 16,825㎢인 강원도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강원도처럼 매우 낮은 인구밀도를 보인다.
또한 케스키수오미주는 모터스포츠 이외에도 스키점프나 아이스하키 같은 동계 스포츠가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강원도는 WRC 개최를 계획할 당시 케스키수오미주를 벤치마킹하여 계획을 구상하였다.
F1 코리안그랑프리의 가장 큰 실패 이유로는 수도권에서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교통문제와 전세계 관광객과 취재진을 모텔에서 재워야 했던 열악한 인프라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강원도의 경우 서울에서 강릉까지 약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경강선’이 있으며, 오랫동안 관광산업으로 쌓아온 탄탄한 인프라까지 갖춰져있다. 특히 인제스피디움에 자리잡은 134실 규모의 호텔과 118실 규모의 콘도는 선수진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기 안성맞춤이다.
또한 인제스피디움은 강원도 특유의 산악지형을 고려해 설계되어, 다양한 코너와 급변하는 고도차를 활용한 구간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2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3층규모의 관람석까지 갖춰져 그야말로 WRC 드라이버를 위한 최고의 무대라 할 수 있다.
강원도와 전라남도 영암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광지의 유무’이다. 코리아인터네셔널 서킷이 위치한 영암의 경우 딱히 대단한 특산물이나 특출난 관광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인제스피티움이 위치한 인제는 춘천, 속초, 강릉 등 특산물이 유명한 관광지가 가까히 위치해 있으며, 알펜시아, 강원랜드 등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적인 장소도 존재한다. 즉, WRC와 연계되는 관광산업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강원연구원이 발표한 ‘세계자동차경주대회 경제효과 분석 연구용역’에 따르면, 강원도 WRC에 방문할 관광객은 총 6만 명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WRC 개최국 중 가장 방문객이 적은 호주보다 2만 명 적은 수치이나, 방문객이 하루 63,340원 (2014년 국민여행실태조사 기준)정도 소비한다고 가정한다면 하루 38억 원정도의 관광수익이 발생한다. WRC가 총 4일간 진행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50억 정도의 개최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20 WRC 개최지로 선정된 일본은 자국 메이커의 자동차인 ‘도요타 야리스’가 WRC에 참가하고 있다. 자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자국 메이커가 참전한다는 것은 ‘응원’을 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2004년부터 홋카이도에서 꾸준히 WRC를 개최하였으며, 2004년에는 자국의 메이커인 ‘스바루’가 우승을 차지하며 많은 팬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반대로 2010년에는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가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WRC에서 철수하면서 일본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WRC를 개최하지 않았다. 이처럼 WRC에서 자국 메이커의 유무는 자국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데 큰 메리트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대한민국의 대표 자동차 메이커 현대자동차는 2014년 ‘i20 쿠페 WRC’로 WRC에 복귀를 선언한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7, 2018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19시즌에는 제조사 부분 챔피언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만약 2020 WRC가 계획대로 개최된다면, 현대자동차자는 도요타의 홈그라운드에서 한일전을 치르게 된다. 코스 이곳 저곳에 관중들이 빼곡히 들어차는 WRC의 특성을 생각하면, 현대자동차는 엄청난 심적 부담감을 안고 경치를 치를 지도 모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강원도에서 WRC를 개최할 경우 현대자동차는 엄청난 홈 어드밴티지를 얻게 된다. 현대차, 기아차가 참가하지 않는 F1과 달리, WRC는 <현대자동차VS도요타>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강원도에 경기를 보러갈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에게 ‘랠리’는 큰 의미를 가진 모터스포츠이다. 1987년 용평에서 열린 우리나라 첫번째 모터스포츠는 랠리 형태의 경기였으며, 같은 해 영종도에서 열린 경기도 1.6km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랠리였다.
이처럼 모터스포츠의 뿌리가 랠리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F1의 실패는 당연한 것이였을지도 모른다. F1의 실패를 교훈삼아 우리나라가 모터스포츠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강원도 WRC 개최를 깊이 응원해본다.
10년 만에 WRC 개최하는 일본, 한국은 안될까?
글 / 다키 포스트
ⓒ DAKI POS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콘텐츠 관련 문의 : dw.han@dkgearlabs.com
- 남심을 자극하는 배기량 27리터 궁극의 자동차. 실제 모습은 이렇습니다
- “이걸 아직도 갖고 있네!” 자동차 카탈로그 수집가, 직접 만나봤습니다.
- [차소설] 그 시절, 우리의 패밀리카는 스타렉스였다
- 현대차 일본 재진출 하나? 현지인 반응, 직접 인터뷰 해봤습니다.
- 아반떼 크기에 팰리세이드 휠베이스? 현대차 신형 전기차, 강남에서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