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부품회사다. 과거 위니아 만도의 에어컨과 김치냉장고가 유명했기에, “김치냉장고 팔던 회사가 무슨 자동차 부품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만도라는 기업 자체는 자동차 부품으로만 수 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계 및 중공업 역사를 대표하는 기업들 중 하나다.
만도의 전신인 현대양행은 1962년 설립되었다. 창업주인 정인영 회장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과 형제 관계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기계/중공업 산업 발전”이라는 의지 하에 현대양행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기상 현대양행이 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보다 먼저 설립되어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보다 6년 앞선 형님이다. 물론, 오늘날 덩치는 현대차가 더 크지만 말이다.
현대양행이 처음부터 자동차 관련 부품을 만들던 것은 아니다. 중장비 등 기계와 관련된 기반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스푼, 포크, 나이프 같은 양식기 생산과 수출로 첫 발을 내디뎠으며 때로는 주전자와 냄비를 판매했다.
그러다 설립 후 2년 뒤인 1964년, 안양기계제작소를 세워 본격적으로 기계공업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현대양행은 미국 포드(Ford)사와의 협력관계를 맺어 자동차 부품 생산 및 개발을 진행했다. 이때 기존에 보유한 각종 설비를 활용해 히터박스, 휠캡, 자동차그릴, 클러치 페달 등을 생산했다.
1970년대는 현대양행의 황금기다. 안양 생산공장 근처인 군포에 대규모 건설 기계와 중장비 생산 라인을 신설했고, 당시 정부의 요청으로 창원에 추가로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중공업을 위한 설비가 갖춰지자
▣아메리칸 호이스트 앤 데릭사와 기술제휴로 트럭크레인 국내 최초 출시
▣프랑스 포크레인사와 기술제휴로 굴삭기 생산.
▣피아트 앨리스사와 손잡고 불도저, 휠로더, 모터그레이더 생산 등을 진행했다.
이 시기는 경제성장과 중장비 수요 폭증, 중동 건설 붐이 일고 있었다. 시대 흐름을 잘 읽은 현대양행은 우리나라 최대 중공업 기업 중 하나로 발돋움하며 그룹 명을 한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한라건설, 한라해운 등 계열사 설립까지 진행되었다.
자동차 부품사업은 ▣일본 도키코 ▣미쓰비시 ▣미국 미첼 ▣영국 루카스 등과 손잡아 히터박스와 휠 캡, 자동차 그릴 같은 기초 부품 생산에서 엔진 라디에이터, 쇼크 업쇼버, 스타트 모터, 브레이크 시스템, 자동차 전장품 개발 및 생산으로 기술 자립화를 꾀했다.
그 밖에 미국 GE, CE사 등과 제휴를 통해 화력 및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설비 생산까지 진행했다. 이처럼 다양한 제조사들과 기술제휴를 맺었다.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한라가 진행한 각종 사업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닌 기술 습득과 국산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장비, 자동차, 발전설비까지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모습은 한국의 GE, 한국의 웨스팅하우스, 한국의 미쓰비시라 표현해볼 수 있겠다.
특히 사람 외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인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핵심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1970년 말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중화학공업 과잉 투자를 관리한다는 명분 아래 여러 기업들과 공장을 통폐합하는 악수를 두면서 폭삭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로 인해 완공을 앞두고 있던 창원 공장을 강제로 빼앗겨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중공업)으로 분리된 뒤 국영기업이 되었으며 현대양행의 주력 사업부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대우그룹으로 강제 편입되었다.
여담으로 강제로 분리된 한국중공업은 영광 원자력발전소 설비 국산화에 성공한 국영기업이 되었으며, 오늘날 두산중공업이 되었고, 한국중공업 창원공장은 볼보코리아 중장비 생산공장과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군사무기 생산 공장으로 발전하는 등 굵직한 기업으로 변모했다.
만약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분리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삼성과 같은 지위의 기업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기업의 주력 사업부를 전부 빼앗긴 입장에서 한라그룹은 사업을 전부 포기할 만한 분위기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남은 계열사인 만도기계, 한라해운, 한라자원, 한라시멘트, 인천조선(현재 현대삼호중공업)을 기반으로 재도약을 시도했다.
특히 1984년 이후 만도기계를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사업을 빠르게 성장시켰는데, 연 30만 대 생산규모 공장 증축과 기술연구소, 중앙연구소 설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1986년 미국 포드사와 알루미늄 라디에이터 제조사 한라공조(현재 한온시스템)를 합작 설립했다.
참고로 한온시스템은 차량 냉각장치와 관련된 기업으로, 온도에 민감한 배터리 혹은 연료전지를 장착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가 점차 늘어나면서 냉각장치 수요가 증가해 한창 주목 받고 있는 기업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만도기계는 그동안 쌓아온 자동차 부품 기술력을 발휘해 자동차 전자제어 섀시, C-EPS, ECS, ABS를 국산화하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이때 만도기계의 제품이 들어간 차량으로 쏘나타, 엘란트라, 엑센트, 다이너스티 등이 있다.
지금은 당연히 들어가 있어야 안전 기능들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싼 승용차 혹은 옵션으로 비싼 값을 지불하고 선택해야 했던 기능들로, 유명 제조사들만이 생산할 수 있었던 기술들이었다. 이를 국산화했다는 것은 국산차의 국산화율 상승과 더불어 가격 경쟁력 및 기술력 확보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 가능하다.
한라그룹은 기적에 가까운 사업 운영 덕분에 1990년대 재계 12위로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무리한 조선소 신규 투자에 IMF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막대한 빚이 발생해 1997년 12월 한라그룹은 부도 선언을 했다.
한라그룹이 빚 감당을 하지 못하고 부도 선언을 한 데에는 무리한 투자를 위해 단기 대출을 연거푸 받았던 것이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단기 대출 규모만 3조 원에 달했고 전체 빚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대출 만기가 다가와도 제때 갚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라그룹의 부도 선언 이후 만도기계는 4파트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졌다. 자동차용 전장품 생산 파트는 프랑스 발레오에, 위니아 에어컨과 자동차 공조품을 생산하는 파트는 스위스 UBS 에,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파트는 미국 깁스에 매각되었다. 그 밖에 다른 계열사들도 만도기계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매각 이후 꾸준한 개발을 통해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거대 자동차 제조사가 만도 기계와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삶은 드라마라 했던가? 매각되지 않은 남아있던 한라건설과 한라레미콘이 성공하면서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고, 이를 기반으로 그룹 재건에 나섰다. 이때 매각된 만도를 9년 만에 되찾아오는데 성공했다. 만도 재 인수 사례는 IMF위기로 잃은 기업을 되찾아온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후 내부 사정이 안정화되면서 차량 부품 제조기술 완성도를 더욱 높여 브레이크 시스템, 조향 시스템, 현가 시스템 부문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대표적인 기술로 브레이크 시스템 전반, ABS, TCS, ESP, ESC 등 전자 제어 전장시스템, MDPS 스티어링 휠 시스템 등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 해외 제조사 납품에 이어 푸조-시트로앵(PSA)에 캘리퍼 브레이크를 납품하는 등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ADAS(능동형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위한 전장 장비 출시에 박차를 가하면서 차세대 차량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기술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운전자 차선 변경 보조 시스템(LCA) ▣차선유지보조시스템(LKAS) ▣타이어 압력 모니터링 시스템(TPMS)이 있다.
최근에는 ▣자동 긴급제동시스템 ▣HDA ▣자동주차 시스템 ▣자율주행 기술 등까지 개발 완료 혹은 진행 중이다. 지금 나열한 기능들은 모두 최신 차량에 적용되는 것들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개발 가능한 사항들이다.
만도는 우여곡절 끝에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순위에서 43위에 랭크되는 성과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유명 제조사 납품 실적을 보면 ▣BMW ▣폭스바겐 ▣GM ▣닛산 ▣PSA ▣크라이슬러 ▣포드 ▣현대 등 굵직한 곳과 관련되어있다.
만도가 두 번의 위기를 버티며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 부품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시기적절한 기술제휴 전략과 합작사 설립, 국산화 의지, 연구개발을 위한 막대한 투자가 지목된다.
1970년대 현대양행시절, 일본, 미국, 영국 제조사들과 기술제휴로 차량 부품에 대한 국산화를 진행해 300여 종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이후 80년대 위기를 넘긴 후 1990년대 중순까지 기술 제휴 목적으로 일본, 독일, 미국, 영국, 스웨덴 등 23개 업체와 33건의 기술도입 계약을 진행해 핵심 부품 개발 노하우를 습득했다. 그리고 보쉬, 포드 등과 합작사를 설립해 선진 기술도입과 고유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외환위기를 벗어난 이후에는 전자제어 시스템 위주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도입이 진행되어 자율 주행과 첨단 안전기능과 관련된 기술을 상당 부분 국산화했다. 특히 만도 전체 구성원의 20% 이상이 연구인력인 점은 그동안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만도가 자동차 부품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길게 설명했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포크 만들던 회사, 지금은 세계급 자동차 부품회사?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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