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가워요. 프라이드입니다. 대부분 아실 테지만, 모르시는 분들은…대충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겠네요. 요새 저 보기가 힘들죠? 작년에 해외로 이민을 갔거든요…
유럽, 미국 등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고 싶기도 해서 돈 벌면서 이곳저곳 여행 다닐 겸 떠났습니…
휴… 아니다…그냥 사실대로 말할게요 한국에서 너무 인기가 없어서 그나마 실적이 괜찮은 해외로 쫓겨났어요
그놈의 SUV가 뭔지 참…
그래도 좀 버티면서 신차로 새롭게 등장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집에서 “프라이드야, 해외 나가서 일하고 있어.” “궁금한 거 없지? 없을 거라 믿어. 여기, 비행기 티켓 받아. 집도 구해놨으니까 잘 다녀와!” 하는 거 있죠?
와! 제가 87년도부터 일하면서 집안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이렇게 푸대접할 줄이야… 하소연 할 곳이 여기 밖에 없네요. 당분간은 해외 생활을 해야 하지만… 전 김치에 된장국을 먹고 싶지, 피쉬&칩스나 빅맥은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고요!
아무튼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실래요? 요새 향수병이 도졌는지, 한숨만 나오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기아자동차에서 교육을 받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베테랑 직장인입니다. 살던 곳은 소하리 공장입니다. 요즘은…유럽, 멕시코, 북미 등 해외 별장에서 지내는 중이죠.
가족으로는 뭐, 모닝, 레이, K3, K5 등… 세단이나 해치백 형태 가족들이라면 모두 가족이라 할 수 있겠네요. SUV는 친척쯤 되고요.
음… 직계가족을 선택하자면, 동생으로 스토닉이란 녀석이 있습니다. 근데 얘 땜에 제가 해외로 나가게 된 거라, 말 꺼내기도 싫네요. 소형SUV타이틀 넣더니 잘나네요…어휴, 속 쓰려…
이와 별개로 동생 아벨라와 리오가 있었습니다…지금은 둘 다 구천을 헤매고 있을 텐데… 얘네들도 참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아벨라는 잘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라졌고, 리오는 제가 잠시 휴직하는 동안 제 뒤를 이어 열심히 일을 하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쓰러졌죠.
뭐, 둘 다 열심히 일하기는 했는데 다들 아시잖아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노력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 노력에 추가로 잘 해야 했는데, 인기를 얻지 못해서 스트레스로 탈모가 오더니, 단명했죠.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고, 슬슬 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제가 사회로 나오기 전만 해도 우리 집은 반지하 생활을 하면서 끼니마다 라면만 먹고살았습니다. 전두환이라는 이상한 아저씨가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진행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죠.
당시 세단과정을 배우던 가족들이 모두 강제퇴학을 당하고 1~8톤 트럭, 버스, 특장차 등을 만드는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잘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7년 가까이 이상한 화물차로 일을 하라고 하니, 적성에 맞지도 않고, 당연히 궁핍한 삶을 이어갈 수 밖에요.
정부의 어이없는 조치는 이미 현업에서 일하던 어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잘 나가던 브리사 영감님이 양로원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아직 멀쩡한데 왜 끌고가!”라고 외치던 소리가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군요. 시대가 어수선한 탓에 양로원에 가신 후 소식이 없습니다…
집에서는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풀리기 전부터 새로운 차량을 키워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고, 그 특수과정에 제가 선정되어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실 제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동시에 일본과 미국도 갖고 있었답니다. 음.. 정확히는 여권상 대한민국 국적인데, 특별 자격으로 일본과 미국도 프리패스 가능한 상태라고 보면 되겠네요.
왜냐면, 이론교육(설계)는 일본의 마쓰다에서, 실무교육(생산)은 우리 기아차에서, 그리고 일자리 알선(판매)는 미국의 포드에서 담당했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각 집안에서 모두 저를 데려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프라이드, 일본에서는 마쓰다121, 미국에서는 페스티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제 등장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86년 말이고, 실제 등장은 1987년 1월 입니다. 다들 3월로 알고 계실 텐데 정식으로 일하기 전, 미국으로 먼저 건너가 인턴생활을 했답니다.
미국으로 처음 건너갈 때는 한 사람당 4천5백~5천5백 달러 정도의 몸값을 예상하고 일을 하러 갔었죠.
3월이 되자, 우리나라에서 직장인으로의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87년도는 해마다 10%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로, ‘마이카’시대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와 함께하려고 했습니다. 덕분에 첫 해에만 국내외로 8만 8천여 명의 사람들과 일을 할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처음에는 3도어 해치백 스타일로 등장했고, 이듬해 5도어 해치백으로 스타일을 추가했습니다, 90년 말에는 ‘프라이드 베타’라는 이름의 4도어 세단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 세단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이 시기 제 덩치는 베타 스타일을 기준으로, 길이 3.935m, 너비 1.605m, 높이 1.455m였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지금의 경차 친구들보다 40cm 정도 길었고, 엑센트같은 소형 세단 친구들보다는 20cm 정도 짧았네요. 뭐, 시대를 생각하면 나름 넉넉한 공간이었습니다.
체력은 마쓰다에서 넘겨준 1.1~1.3L B타입 가솔린 심장을 이용해 62~73마력에 10.3~13.5kg.m 체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음… 요즘 경차들보다 더 높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네요.
마쓰다의 B타입 심장은 나름 유명했습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약 20년 동안 사용할 만큼 우수한 심장이었죠. 저 프라이드, 마쓰다 패밀리아/데미오, 포드 레이저, 우리 집안의 아벨라와 리오가 사용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오늘날 경차 후배들보다 일하는 요령이 좋아서 밥을 덜 먹고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똑같이 가솔린에 밥을 말아 먹어도, 저는 리터당 대략 16~17km를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저 친구들은 리터당 13~15km 밖에 못 가더군요. 이렇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죠.
마쓰다와 포드에서는 제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제 뼈대를 기반으로 포드 아스파이어, 마쓰다 데미오와 같은 녀석들을 사회로 내보냈습니다.
저와 피를 나누고 있는 녀석들이니, 물 건너 형제들로 볼 수도 있겠네요. 처음에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 인사를 했는데,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겨버렸습니다.
아 참, 그리고 제 몸값이 대략 370~430만 원 정도 했는데, 지금 물가로 약 1,200만 원 정도였습니다. 경차 가격에 우수한 연비, 넓은 공간, 여러 나라가 함께 해서 사실상 수입차 같은 분위기까지!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죠.
만약 저와 함께하고 싶은데 지갑이 얇은 사람들은, 특별히 60개월 할부제도를 만들어서 월 3만 원 정도만 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엄청난 실적을 거두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고 우리 집은 반지하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겹도록 먹던 라면대신 흰 쌀밥에 된장찌개, 계란 옷 입힌 빨간색 진주햄을 먹을 수 있게 되었죠.
나중엔 좀 더 덩치가 큰 왜건 스타일이나 젊은 친구들을 위한 영, POP 스타일로도 등장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려 노력했습니다.
한창 잘나가던 93년에는 저와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친 동생 아벨라가 후임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제 뒤를 이을 가족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밥그릇을 빼앗길 위험이 있었죠.
“아니, 그동안 다 쓰러져가는 집안 일으켜 놨더니 팽하시려고요?”라며 집에 항의를 했고, 결국 아벨라는 고급 소형차량으로 별도의 교육과정을 거쳐 저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휴… 그래도 이 녀석이 같은 체급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제 인기가 확 줄어들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었죠.
어느 정도 집안 내 분위기가 정리되고, 기존 자동차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며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갑자기 제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엑센트라는 녀석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녀석이 등장하면서 제 인기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그동안 쌓아온 이름값으로 간간이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제 스스로가 비참해져서 재충전할 시간을 갖고자 2000년 초, 사표를 내고 잠시 쉬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엉뚱하게도 아벨라도 삶에 찌들었는지 저를 따라 사표를 냈는데, 다시 데뷔하지 못하고…지금은 흑백사진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표를 내면서 동시에 리오라는 녀석이 후임으로 들어왔습니다. 맨 처음에 리오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지금 얘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저를 대신해 소형차 시장을 지켜왔는데, 옆집 웬수 현ㄷ… 아니, 지금은 큰 집이 된 현대차가 준중형 아반떼를 내세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밀려나게 되었고 스트레스로 짦은 삶을 살았죠.
저는 사표를 내고 쉬는 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해외에 가서 잠깐씩일을 봐주며 잘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는 바람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 모습 그대로 복귀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26개월 전, 그러니까 2년 2개월 전부터 2,100억원의 교육비를 내고 나름 자기계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냥 여가를 즐긴 것이 아니란 소리죠.
예전에는 ‘싸고 튼튼한 자동차’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뛰어난 성능과 안정성을 갖추고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집안 어르신들은 “프라이드야 네 힘이 필요해!”라며 엄청난 부담감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즉, 소형차 시장을 다시 휘어잡으라는 주문이었죠. 그동안 쉬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 바꾸는 바람에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엥? 프라이드 나왔다며? 프라이드 어딨는데?”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즉, 이름만 프라이드라는 이야기였죠.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완전히 변신(풀 모델 체인지) 하면서 추억의 프라이드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말이죠. 게다가 큰 집(현대차) 친척, 베르나와 동일한 뼈대(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오리지널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각 프라이드에서 나름 둥글고 귀여워진 모습으로 등장해 2005년 4월 1,270명, 5월 2,003명, 6월 2,002명 등 아쉽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등장한 것치곤 괜찮은 실적을 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모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긴 했어도 예전만큼 일을 잘하긴 하네!”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습니다.
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오늘날 엑센트 보다 12.5cm 긴 덩치를 갖추고 체력은 U디젤 심장을 기준으로,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112마력에 24.5kg.m 체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뭐, 도심지에서 타고 다니기 적당한 수준이죠.
U 디젤 심장은 쉽게 말해 다용도 심장으로, 주로 저 같은 소형차량이 사용했습니다. 이 심장을 장착하면 리터당 20.5km를 달릴 수 있을 만큼 매우 효율적인 심장이었죠.
게다가 시대에 맞게 USB를 통해 MP3나 오디오 등을 들을 수 있도록 내부 구성에 신경을 썼고, 2009년에는 우리 집안 고유 패션 호랑이코 형상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뉴 프라이드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을 하면서 4도어 세단 스타일과 5도어 해치백 스타일로 활동을 했는데, 역시 이 시절에도 세단 스타일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한편 해외에서는 제가 리오라는 이름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12개국을 중심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2006 오토베스트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세련되고 가성비가 뛰어나다.”라는 의견을 주로 보였죠.
리오라는 이름은 원래 생을 마감한 리오가 해외에서도 사용하고 있던 이름인데, 해외에서 프라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보다 기존에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1년 9월 말, 소형차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큰집과 우리 집이 유럽과 북미에 가서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유럽형, 북미형, 중국형, 한국형 스타일로 나누어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예전보다 배울게 많아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내외로 인정받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6년 5개월 만에 새 단장을 한 탓에 제 스스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이때는 경차에서 바로 준중형 차량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나 엑센트 같은 소형차들이 기를 못 펴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다시 한번 변신해 제 존재감을 어필하며 소형차 시장을 휘어잡을 필요가 있었죠.
우선, 외모는 예전과 동일한 호랑이코 그릴에 날렵한 눈매(헤드램프)로 얼굴을 꾸몄습니다. 여기에 덩치는 예전보다 12.5 cm 길어져 소형차 중에서는 나름 덩치 가 큰 차량이 되어있었죠. 물론, 오늘날 아반떼AD와 비교하면 20cm이상 짧기 때문에 준중형을 꿈꾸기는 어렵지만 불편할 만큼 좁지는 않았습니다.
체력은 디젤 기준 1.4L U-Ⅱ 디젤 심장을 사용해 90마력에 22.4kg.m최대토크(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뭔가 비실해 보이는 체력이지만, 1,500~2,750 심장박동수(rpm)에서 최대로 힘을 낼 수 있어서 도심지에서 답답한 주행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리터당 최대 21.8km를 달릴 수 있어 경제성, 가성비=프라이드 공식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동시에 듀얼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차세제어장치, 버튼식 시동, 7인치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안전 및 편의 기능을 배워 사람들이 운전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가성비가 좋아도 불편하면 인기를 얻을 수 없으니 말이죠.
2014년 말에는 전보다 스포티한 모습을 강조한 더 뉴 프라이드로 성형을 좀 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세단 및 SUV에 날렵하거나 스포티한 이미지를 적용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저도 이에 맞출 필요가 있었죠.
특히 내부 인테리어에 광택(하이그로시)나는 장식을 넣어 고급스러움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타이어 공기압을 알려주는 장치인 TPMS나 USB충전기, 후방주차 보조시스템 등 요즘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안전 및 편의 기능들을 교양과목으로 선택해 운전자 안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제 인기가 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16년부터 월마다 300명만이 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재미있게도 수출은 19~20만 명이 저를 찾았습니다. 국내에서의 인기와 비교했을 때 약 26배나 차이를 보였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젤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저는 한참을 생각하다 답을 찾았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야 했다.”입니다.
사람들은 87년도부터 10년 동안 이어져왔던 초창기 프라이드에 대한 향수가 강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프라이드는 싸고 튼튼하고 연비가 좋았어!”라는 반응이 상당 부분 차지했죠.
특히 현재 40대 후반~50대 중반 운전자들은 제가 처음 등장할 시기에 20~30대 사회인이었습니다. 내 차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 가성비 좋은 저를 많이 선택해 주셨기에, 이에 따른 추억이 많은 편이죠.
그런데 세대를 거듭하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실망감이 생각보다 컸다고 합니다. “에이…프라이드 맞아? 이름만 프라이드잖아?”와 같이 말이죠.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소형 SUV 녀석들이 제 밥그릇을 뺏는 바람에 현대의 엑센트, 쉐보레의 아베오와 같은 푸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작년 동생 스토닉이 제 뼈대를 빌려서 소형 SUV로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제 존재감 자체가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녀석이 등장할 당시 프라이드 SUV버전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오갔습니다. 뭐,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죠. 4세대로 변신할 때 사용한 프레임을 고스란히 갖다 썼으니 말이죠.
동생이니 뭐라 말은 못 했지만, 국내에서의 한줄기 희망을 완전히 가져가버린 녀석으로 기억에 남네요.
덕분에 집에서는 “프라이드야, 가자! 유럽으로!”라며 저를 유럽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저는 마지막 도전을 위해 2016년 하반기 4세대 프라이드(리오)로 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결국 유럽과 북미에서만 세련된 해치백으로 등장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스토닉이 제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래전 동생 리오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죠. 고철덩어리가 되진 않았지만요…
4세대로 변신했다는 내용을 언급했으니, 어떻게 생겼는지는 잠깐 말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외모는 그냥 기아차 집안 해치백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여러분이 상상하는 프라이드는 없습니다.
생각보다 유러피안 스타일을 많이 적용해서 폭스바겐 폴로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곤 합니다. 그 외모를 따라 했는지는 제게 물어보지 마세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성능이나 실내 또한 유럽의 실용성에 기반을 둔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HMI(휴먼 머신 인터페이스)라고 해서 운전자에게 최적화된 공간과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센터패시아 버튼 개수를 줄이고 최대한 간단한 디자인으로 구성했죠.
그밖에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 뼈대의 51%를 초고장력 강판을 적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제 디자인과 성능, 그리고 가격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동유럽권을 중심으로 요즘도 불티나게 판매되면서 국위선양 중이랍니다. 게다가 2017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상도 받을 만큼 외모도 괜찮은 편이죠.
물론, 해외 사람들이 저를 많이 찾아주니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그래도 제 핏줄은 나름 한국인인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답니다.
영국에서는 피쉬&칩스와 정어리파이를, 미국에서는 빅맥을, 러시아에서는 라면에 마요네즈 뿌린 음식을…해외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추장 비빔밥이 그리워지는 하루입니다.
요즘 소형이나 중형 SUV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좀 더 실용적인 저를 다시 찾아주는 건 어떨까요?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
나중에 우리나라에 해치백 전성기가 오면 그때 다시 한 번 뵙도록 할게요!
해외로 이민 간 프라이드 인사드려요…
글 / 다키 포스트
사진 / kia, naver, netcarshow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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